중동 전쟁 발발 이후 시차를 두고 누적된 충격이 4월 국내 실물경제를 강타했다. 석유정제 생산이 37년 11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급락하고 자동차 생산도 두 자릿수 감소한 가운데, 소비와 투자마저 일제히 뒷걸음치며 지난해 8월 이후 8개월 만에 '트리플 감소'가 재현됐다.
국가데이터처가 29일 발표한 '2026년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광공업 생산이 전월 대비 0.7% 줄었다. 세부적으로는 석유정제 생산이 무려 19.4% 감소해 1988년 5월(-22.1%) 이후 약 38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원유 수급 여건이 악화된 중동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자동차 생산도 10.0% 줄며 지난해 9월(-15.3%) 이후 7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나타냈다.
이처럼 주요 제조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농림어업을 제외한 전산업 생산지수(계절조정)는 117.8(2020년=100)로 전월보다 0.6% 하락했다. 서비스업 생산도 1.0% 줄며 낙폭을 키웠다. 앞서 2월(2.1%)과 3월(0.4%)에 걸쳐 이어지던 생산 회복세는 석 달 만에 꺾였다. 한편 슈퍼사이클이 이어지는 반도체는 3.1% 생산이 늘어 유일하게 선전했고, 전산업 생산을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2.4% 증가한 수치여서 기저 자체는 양호한 상태를 유지했다.
소비 지표는 더욱 가파른 하락을 보였다. 상품 소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액지수가 전월보다 3.6% 감소한 것이다. 이는 2024년 2월(-3.7%) 이후 2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다. 특히 통신기기·컴퓨터 등 내구재 판매가 11.1% 급감하며 소매 부진을 이끌었다. 서비스 소비를 반영하는 서비스업 생산 역시 1.0% 줄어 소비 심리 위축이 재화와 서비스 양쪽에서 동시에 나타났음을 보여줬다.
투자 부문도 예외가 없었다.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3.6% 감소했고, 건설업체의 국내 시공 실적을 나타내는 건설기성(불변)도 1.4% 줄었다. 2~3월 증가에 따른 기저효과에 더해 전쟁발 불확실성이 기업의 투자 결정을 미루게 만든 결과로 해석된다.
다만 경기 흐름을 가늠하는 선·동행 지표는 소폭 개선됐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가 전달보다 0.2포인트 상승했고, 향후 경기 국면을 예고하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도 0.6포인트 올랐다.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꺾인 상황에서도 선행 지표가 반등했다는 점은 향후 실물 지표 회복 가능성을 일부 열어두는 대목이다. KDI도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생산 비용이 빠르게 증가하는 한편 소비자심리지수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진단하면서도, 반도체 경기 호조로 수출 증가세는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