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현 거주지에 머물기 위해 재계약을 선택한 세입자 대부분이 이전보다 높은 보증금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세 공급 감소와 신규 입주 물량 부족이 맞물리면서, 갱신 수요가 늘어나는 동시에 재계약 조건도 갈수록 세입자에게 불리해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아파트 전월세 실거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6월부터 8월까지 서울에서 전세를 전세로 갱신한 계약은 1만 3580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보증금이 오른 계약은 1만 2169건으로 전체의 89.6%에 달했다. 10건 가운데 9건꼴로 보증금을 높여 재계약한 셈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이미 사용했거나 처음부터 쓰지 않고 협의 갱신을 택한 경우에는 두 자릿수 인상도 일상화되고 있다. 보증금이 10% 넘게 오른 계약 비중은 12.6%로, 최근 갱신 계약 8건 중 1건꼴에 이른다. 갱신권을 쓰지 않은 전세 계약의 경우 평균 보증금 인상률이 7.5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입자들이 더 높은 보증금을 감수하면서까지 재계약을 선택하는 배경에는 심각한 매물 부족이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줄어든 상태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 따른 실거주 의무와 대출 규제가 매물 감소를 부추기고 있으며, 2024~2025년 입주한 신축 단지의 임대차 가운데 상당수가 월세로 거래되는 등 전세 공급의 탄력성도 크게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일부 세입자들은 향후 전셋값이 더 오를 것에 대비해 계약갱신청구권을 아껴두는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갱신권을 사용하면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할 수 있지만, 평생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제약 때문에 일정 수준의 인상분을 감수하더라도 권리를 남겨두려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체 전세 거래 중 갱신 계약 비중은 뚜렷하게 상승했다. 지난해 42.1%였던 갱신 비중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50.7%로 올라섰으며, 최근 3개월(6~8월)에는 53.8%까지 치솟았다. 신규 계약보다 재계약이 더 많아진 것이다.
전세 갈아타기에 드는 비용 부담도 빠르게 커졌다. 전용면적 84㎡ 기준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의 평균 보증금 격차는 지난해 5517만원에서 올해 9154만원으로 크게 벌어졌다. 상반기 통계에서도 같은 국민평형 기준 신규-갱신 격차가 1월 4375만원에서 6월 775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를 선택할 경우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보증금이 불과 수개월 새 배로 늘어난 셈이다.
보증금 인상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월세 시장으로 밀려나고 있다. 올해 들어 전세에서 재계약 시 월세가 끼는 이른바 '반전세 전환' 가구는 3043건으로, 전년 동기(2791건)보다 9.0% 늘었다. 오르는 전셋값을 대출로 충당하려 해도 시중은행들이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한도를 축소하거나 금리를 올리면서 선택지는 더 좁아지는 모양새다.
재계약 부담의 확산세는 전통적으로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던 서울 외곽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보증금 인상 계약 비중이 높아진 자치구는 서울 25곳 중 16곳에 이르는데, 특히 노원·도봉·성북 등 동북권에서 증가폭이 컸다. 노원구는 79.9%에서 87.3%로, 도봉구는 81.0%에서 85.6%로, 성북구는 85.5%에서 90.7%로 각각 올랐다.
갱신 계약 1건당 평균 보증금 증액 규모 역시 외곽에서 빠르게 늘었다. 노원구는 1542만원에서 1884만원으로, 도봉구는 1436만원에서 1915만원으로, 성북구는 2279만원에서 3016만원으로 확대됐다. 반면 강남구(5474만원→4867만원)와 서초구(5439만원→4795만원)는 평균 증액 규모가 오히려 줄어, 고가 주택 밀집 지역보다 외곽에서 갱신 부담 증가세가 더 가파르게 나타나는 구조적 역전 현상이 확인됐다.
2026~2027년은 신축 단지의 첫 갱신 주기가 돌아오는 시점과 겹쳐 시장가 충격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갱신권을 소진한 임차인이 시장 가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전세 공급을 늘리기 위한 실질적인 입주 물량 확대 없이는 임대차 시장의 불안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주택 세입자의 주거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정책 기조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