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전통적 '국민평형'이었던 84㎡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주택 구매 부담과 금융 규제가 맞물리면서 59㎡ 소형 평형이 매매·전세 양면에서 84㎡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청약시장에서는 이미 소형이 주류 자리를 꿰찬 지 오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8월과 올해 8월 모두 59㎡·84㎡ 매매 거래가 이뤄진 서울 아파트 69개 단지를 비교한 결과, 두 평형 간 평균 매매가 격차는 22.5%에서 13.0%로 9.5%포인트 줄었다. 전세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신규 전세계약이 체결된 동일 60개 단지에서 두 주택형의 전셋값 격차는 26.6%에서 17.0%로 9.6%포인트 축소됐다.
격차 축소 흐름은 개별 단지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동대문구 답십리동 래미안위브는 2021년 8월 59㎡와 84㎡의 중위 매매가격 차이가 2억8500만 원이었지만, 올해 8월에는 6000만 원으로 좁혀졌다. 이문동 쌍용아파트는 같은 기간 두 평형의 가격 차이가 1억2750만 원에서 350만 원 수준으로 거의 사라졌다. 전세에서도 강동구 고덕그라시움은 2021년 두 주택형 간 전셋값 차가 3억6000만 원이었으나 올해는 1억500만 원까지 줄었다.
매물 호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된다. 강동구 고덕동 롯데캐슬 베네루체의 59.9㎡ 호가는 18억 원, 84.9㎡는 19억5000만 원으로 두 평형 간 차이가 1억5000만 원에 불과하다. 동대문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문동 쌍용 전용 114㎡ 최저 호가가 12억4000만 원인데, 전용 59㎡ 최고 호가 11억5000만 원과 불과 1억 원 차이라면서 요즘 수요자들은 집 크기보다 층수나 단지 위치 같은 조건을 더 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5억 원 이하 아파트를 구입할 때 대출을 최대한도까지 활용하다 보면 아주 작은 금액 차이에도 84㎡ 진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소형 평형 강세는 기존 주택 시장을 넘어 청약시장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리얼하우스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전국 민간 아파트 분양에서 59㎡의 1순위 평균 경쟁률은 19.2대 1로 84㎡(5.5대 1)의 약 3.5배에 달했다. 수도권으로 좁히면 59㎡가 28.3대 1, 84㎡가 4.8대 1로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2020년만 해도 84㎡ 경쟁률(31.1대 1)이 59㎡(12.7대 1)를 크게 앞섰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몇 년 사이에 시장 판도가 뒤집힌 셈이다.
공급 구조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직방 데이터랩 분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신규 분양 가운데 59㎡ 비중은 48.6%로 절반에 육박한 반면, 84㎡는 22.5%에 그쳤다. 2020년 84㎡(32.4%)가 59㎡(25.2%)를 앞섰던 구도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전용 60㎡ 이하 소형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5.71%로 전체 면적대 중 가장 높았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소형 강세가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주택 가격이 오를수록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줄고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도 강화돼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84㎡의 자기자본 부담이 커진다. 여기에 외곽의 넓은 집보다 직주근접·교통·학군이 좋은 지역의 소형 평형을 택하려는 수요, 1~2인 가구 증가, 4베이 설계와 드레스룸·팬트리 등을 적용한 59㎡의 상품성 향상이 맞물리면서 소형 평형은 시장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