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소득의 96% 생활비로 증발…저축 여력 격차가 자산 양극화 키운다

순자산 상위 10% 가구가 우리나라 전체 순자산의 46.1%를 독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마저 3년 만에 반등하면서 소득과 자산 양쪽의 분배 지표가 동반 악화하는 이례적인 양상이 확인됐다.

저소득층 소득의 96% 생활비로 증발…저축 여력 격차가 자산 양극화 키운다
ⓒ 연합뉴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순자산은 4억7144만원으로 전년 대비 5.0% 늘었다. 그러나 이 증가세의 혜택은 특정 계층에 집중됐다. 소득 하위 20% 가구의 순자산은 오히려 4.9% 줄었고,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자산은 13억3651만원으로 7.9% 불어났다. 하위 20%(1억5913만원)와의 격차는 지난해 7.3배에서 8.4배로 벌어졌다. 자산 불평등의 핵심 지표인 순자산 지니계수는 0.625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러한 자산 격차의 출발점은 소득에서 생활비를 제하고 남는 '실질 저축 여력'의 현격한 차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소득 하위 20% 가구는 경상소득의 95.6%를 소비지출과 세금·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로 써버렸다. 소득의 4.4%만 흑자로 남는 구조다. 반면 소득 상위 20% 가구는 소득의 53.2%를 지출하고 46.8%를 저축·투자 재원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소득 자체의 차이에 더해 소득 대비 투자 가용 비율에서도 압도적인 격차가 발생하는 셈이다.

같은 비율로 소득이 늘더라도 가용 투자 재원의 절대량 차이는 자산 축적 속도를 달리 만든다. 여기에 보유 자산의 가격 변화가 격차를 더욱 가속화하는 변수로 가세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부동산을 자산 불평등 확대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하며, 단순히 주택 보유 여부보다 수도권 주택을 갖고 있는지가 자산 격차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수요가 늘면 주택가격과 가계부채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악순환 구조도 확인됐다.

실제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 2월 첫째 주부터 올해 9월 넷째 주까지 86주 연속 상승했다. 기존 보유자는 자산 가치 상승의 수혜를 누리는 반면, 무주택자는 같은 기간 내 집 마련에 필요한 자금 부담이 커진 것이다. 주식 역시 보유 규모에 따라 가격 상승의 혜택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물·금융자산 모두 보유자와 미보유자의 격차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KDI는 장기적으로도 소득 불평등은 완화되는 흐름을 보인 반면 자산 불평등은 꾸준히 심화됐다고 밝혔다.

소득 분배 지표도 다시 나빠지고 있다. 2024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0.325로 전년보다 0.002 올랐다. 소득 상·하위 20% 가구의 소득 배율도 5.78배로 전년 대비 확대됐다. 소득 격차가 2년 연속 개선되다가 되돌아선 것이다. 부채 증가 속도가 자산 증가율을 상회하는 점도 중산층 이하 가계의 재무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부채 보유 가구의 평균 부채는 1억6181만원으로 7.6% 급증해 자산 증가율(4.9%)을 크게 웃돌았다.

정부는 이 같은 구조적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소득층과 미래세대의 자산 형성 자체를 직접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청년미래적금의 경우 청년이 매월 최대 50만원을 납입하면 정부가 일반형은 납입액의 6%, 우대형은 12%를 더해주는 3년 만기 상품으로,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도 제공한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가입 대상 확대와 우대형 지원 비율 상향을 담았다. 우대형 기여금 비율을 15%로 높이고 지방 중소기업 근무자에게는 25%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국회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기존 가입자에게도 상향된 기여금을 소급 지급할 예정이다.

자산 형성 지원 시점도 아동기로 앞당기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 '우리아이 자립펀드' 출시를 목표로 내년 예산안에 1465억원을 편성했다. 지난달 이후 출생한 아동을 대상으로 부모와 정부가 함께 자금을 적립해 장기 투자하는 구조다.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에는 부모의 납입 여부와 관계없이 연 120만원을 정부가 직접 지원한다. 금융위원회는 연평균 수익률 6%를 가정할 경우 연 120만원 투자 시 19년 뒤 4294만원, 연 200만원 투자 시 7157만원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 아동 지원이 단기적인 수당 지급에 집중돼 장기적인 목돈 마련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하며, "청년이 사회에 진입할 때 학자금과 주거·취업 준비에 사용할 최소한의 자산을 갖고 출발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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