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라(연립·다세대) 임대차 시장이 아파트 전세난의 직격탄을 맞으며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아파트 전세 공급이 급감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로 수요가 이동하는 가운데,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잇달아 행사하고 있다.
구조적 배경은 아파트 시장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10월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지정 이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급격히 줄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작년 말 대비 약 3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아파트 임대인들이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는 이른바 '월세화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전세 공급 부족이 심화됐다.
이 같은 흐름 속에 빌라 시장에서는 수치 변화가 뚜렷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신고된 자료를 분석하면, 올해 1~4월 서울 연립·다세대 전월세 거래 건수는 총 4만967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만6244건과 비교해 7.4% 증가했다. 직전 4개월(2025년 9~12월) 4만3807건과 견주면 증가폭은 13.4%로 더욱 가파르다. 4월 잔금 일정에 따라 아직 신고되지 않은 계약까지 포함하면 실제 거래량은 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빌라 임대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4월 서울 연립주택 전셋값은 전월 대비 0.44% 올라 2013년 9월 이후 약 12년 7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1~4월 누적 상승률도 1.34%로, 2011년 이후 15년 만에 동기간 최고치다. 월세 상승세는 전세보다 더 가파르다. 누적 상승률 1.60%로 관련 통계 작성(2015년 7월) 이후 1~4월 기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임차인이 실제 부담하는 금액도 올랐다. 올해 1~4월 서울 연립·다세대 평균 전세 보증금은 2억4098만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775만원 상승했다. 월평균 월세액도 작년 54만8000원에서 올해 56만2000원으로 올랐다. 빌라 전세가격지수는 전세사기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22년 12월 수준에 근접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격이 뛰자 기존 세입자들의 갱신권 행사도 크게 늘었다. 올해 1~4월 서울 빌라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건수는 4189건으로, 지난해 동기 3011건과 비교해 39.1% 급증했다. 올해 갱신청구권 사용 비중은 32%로 집계돼 지난해 동기 24.8%보다 7.2%포인트 높아졌다.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묶는 갱신권을 활용해 2년을 더 버티려는 세입자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공급 전망도 밝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연립·다세대·다가구주택 준공 물량은 4858가구로, 전년보다 20.7% 줄었다. 건설 경기 침체로 신규 공급이 계속 축소되고 있어, 청년과 저소득층의 주거 선택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중저가 아파트 단지의 전월세 물량이 동이 나자 전세사기 문제 이후 외면받던 빌라의 거래가 늘고 전월세 수요도 증가했다"며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서민 주거비 부담이 그만큼 커지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