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20년 만기가 도래하는 서울 장기전세주택(시프트·SHift)을 둘러싼 갈등이 송파·강동을 넘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세의 20% 남짓한 보증금으로 입주했던 수천 가구의 임차인들은 계약 연장과 단계적 분양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서울시는 제도 설계의 원칙을 고수하며 수용 불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갈등의 핵심에는 보증금과 실거주 시세 간의 극단적인 격차가 있다. 강동구 강일리버파크·고덕리엔파크 장기전세 입주민들은 "2027년 만기가 되면 현재 시세 10억 원짜리 집에 살던 전세 세대가 보증금 3억 원만 받아 들고 나가야 한다"며 "같은 단지 내 재계약조차 불가능한 금액"이라고 호소했다. 두 단지에서 시프트 물량으로 공급된 가구는 강일리버파크 1390가구, 고덕리엔파크 1614가구 등 총 3000여 가구에 달한다.
장기전세주택 시프트는 2007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세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한 공공임대 제도다.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 수준 보증금으로 최장 20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보증금 인상률은 2년마다 5% 이내로 제한된다. 초기 공급 당시 일부 단지는 시세의 23% 수준 보증금으로 입주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년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동안 임차인들이 누린 주거비 혜택이 상당한 반면, 만기 이후의 대책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 됐다.
갈등은 강동구에서 시작해 송파구로 번졌다. 지난 11일 서울시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권익 증진위원회 송파파인타운 지회는 입주민 200여 명이 참석한 설명회를 열고 서울시에 △장기적 계약 연장 △단계적 분양(소유권) 전환 등을 공식 요구했다. 지회는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정당한 청구를 하는 것"이라며 "이번 청구는 막무가내 요구가 아닌 도덕적·법적으로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강조했다.
입주민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또 다른 배경에는 서울시의 신규 주택 정책이 있다. 서울시는 만기 반환 물량을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매년 평균 400가구 안팎씩 신혼부부용 '미리내집(장기전세주택Ⅱ)'으로 재공급한다는 방침을 확정한 상태다. 미리내집 입주자는 출산 시 장기 거주와 우선 매수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 20년 거주 후 퇴거해야 하는 기존 임차인들로서는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동구 입주민들은 퇴거에 따른 단지 슬럼화 우려도 제기했다. "수백 가구가 동시에 공실이 될 경우 실거래가 급락 위험이 있다"며 "시세 80% 수준 보증금으로 재계약하고 감정가로 분양전환해도 SH로서는 손해 보지 않는 구조"라는 논리다. 이들은 "우리는 '임대 거지'가 아닌 아이를 함께 키운 20년 이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서울시는 원칙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해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기존 장기전세주택 입주자들은 20년 동안 낮은 주거비로 자립 기회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입주한 것이므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20년이 되기 전 자가를 마련해 나가는 비율도 상당하다"면서 재정 여건과 더 많은 시민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들어 선을 그었다. 기존 시프트와 미리내집은 제도 설계 자체가 다르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온라인 여론도 입주민들에게 호의적이지는 않다.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20년간 혜택을 충분히 누렸는데 추가 요구는 지나치다", "장기전세는 영구 거주권이 아닌 자립을 위한 발판이었다"는 비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입주민 측 온라인 카페에는 '이번 설명회 불참은 곧 퇴거 동의'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는 등 위기감을 조장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번 갈등은 현재 두 자치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8년 은평뉴타운, 2030년 상암월드컵파크, 2031년 세곡리엔파크, 2033년 서초네이처힐, 2035년 서초포레스타 등 주요 시프트 단지들도 잇따라 만기를 맞을 예정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거주권을 지키려는 기존 임차인과 제도 원칙을 고수하는 서울시 간의 충돌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강동구 일대는 최근 전세 매물이 1년 새 29% 줄어드는 등 공급 여건이 악화된 상황이어서, 수천 가구의 동시 이동이 현실화될 경우 주변 전세시장에 미칠 파급이 작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