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요 급증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부족이 심화하는 가운데, 범용 D램의 수익성이 HBM을 추월하는 이례적 현상이 나타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가 내년 가격 협상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일 올해 1분기 기준으로 HBM의 웨이퍼당 매출이 DDR5 64GB RDIMM에 추월당했으며, 수익성 역시 DDR5 64GB RDIMM보다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DDR5, LPDDR5X, GDDR7 등 최신 제품부터 구형 DDR4까지를 아우르는 범용 D램이 수익성 면에서 HBM을 앞지른 셈이다. 증권가 일부에서도 내년 DDR5 마진이 HBM3E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며, 일부 범용 메모리 제품의 영업이익률이 70%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시장 구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런 수익성 역전 현상은 공급업체들에게 새로운 협상 카드를 쥐여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HBM 가격이 충분히 오르지 않을 경우, 수익성이 높은 범용 D램 생산 비중을 늘릴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은 향후 HBM 가격 협상 결과에 따라 양 제품 간 생산 비중 조정을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HBM 생산 확대 속도가 둔화하거나 공급 증가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AI 인프라 수요가 꺾이지 않으면서 HBM 가격 인상 압력은 더욱 커지는 흐름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현재 수요자와 공급자 간 협상의 무게중심이 올해 계약에서 2027년 공급분인 HBM4로 이동하고 있다. 메모리 3사가 채택한 연간 가격결정 방식으로 인해 최근 시장 가격 상승분이 계약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도 HBM에 대한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올해 AI 주문형반도체(ASIC)의 성능 고도화로 AI 칩당 HBM 탑재 용량이 기존 96GB·192GB 수준에서 216GB·288GB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 '루빈 울트라'가 GPU당 HBM 용량을 384GB까지 늘릴 예정이며, 구글 TPU 등 AI ASIC 출하량도 동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루빈 울트라 NVL576'은 2027년 하반기 출시 예정으로, HBM 수요를 추가로 끌어올릴 요인으로 꼽힌다.
트렌드포스는 HBM 세대가 진화할수록 다이 크기가 커지고 수요도 동시에 증가하면서, 범용 D램 생산능력을 잠식하는 이른바 '크라우드 아웃(crowd out)' 효과가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구조적 공급 제약이 공급업체들이 HBM 가격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로 작용하며, 내년 HBM 계약가격은 올해 대비 몇 배 수준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트렌드포스는 전망했다.
한편 D램 공급 부족은 HBM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DDR5 32GB 메모리 키트 가격이 최근 3~4개월 사이 약 4배 폭등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소비자용 범용 메모리 시장도 극심한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완전한 공급 정상화가 2028년 이후로나 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