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초대형·초호화 문주를 경쟁적으로 설계하면서 서울 강남·서초권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이른바 '문주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단지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문주가 집값과도 연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자체가 과도한 디자인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조합과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양상이다.
서울시 건축 관련 위원회의 심의 가이드라인은 "주변 지역과 단절을 초래하는 과도한 문주 설치는 지양"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서초구청은 이 기준에 따라 최근 반포동 래미안트리니원(반포3주구), 디에이치클래스트(반포124주구), 방배동 디에이치방배(방배5구역) 등 세 단지 재건축 조합을 대상으로 각각 문주 설계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과거 스카이브릿지 논란의 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스카이브릿지 설계가 도시 경관 훼손과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다수 재건축 단지에서 잇따라 반려된 바 있기 때문이다.
래미안트리니원의 문주는 다이아몬드 형상의 반짝이는 조명이 별처럼 떨어지는 디자인이며, 디에이치클래스트와 디에이치방배는 물이 흘러내리는 이른바 '폭포 커튼' 방식의 문주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디에이치방배의 경우 2024년 분양 계약 당시 워터커튼 형식의 문주가 계획됐으나 이후 분수 형태로 변경됐다는 조합원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서초구청 측은 "축소나 조정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심의 내용을 안내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이 잇따르는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강남권 신축 단지 문주가 경쟁적으로 대형화·고급화된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입주한 강남구 청담르엘은 높이 7.15m, 너비 약 100m에 달하는 대형 문주를 설치했다. 길게 뻗은 석재 프레임 너머로 고층 주거동과 조경수가 겹쳐 보이는 구조로, 고급 호텔 진입부를 연상시키는 설계다.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는 높이 약 6m, 너비 약 45m 규모이며, 디에이치방배 역시 같은 수준의 문주를 추진해 왔다.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는 곡선형 금속 구조물과 조명을 결합했고,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파란 조명이 들어간 게이트형 구조로 진입부를 극적으로 연출했다.
건설사들이 문주 특화 경쟁에 뛰어든 직접적 계기는 정비사업 수주 환경의 변화다. 공사비 급등으로 건설사들이 사업성 있는 현장만 골라 수주하는 '선별 수주' 기조로 돌아서면서, 강남권 등 알짜 정비사업지에서의 수주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건설사들은 해외 건축사사무소와의 협업, 프리미엄 브랜드 론칭과 함께 웅장한 문주를 조합원 설득을 위한 핵심 카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비사업 설명회 현장에서도 문주는 커뮤니티 시설, 조경, 외관 특화와 함께 빠지지 않는 제안 요소가 됐다.
단지명과 외관 디자인이 입주 후 시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도 이런 흐름을 부추긴다. 같은 행정구역에 속하지 않음에도 목동, 서초 등 선호 지역명을 단지명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일부 현장에서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지 입구가 아파트의 첫인상을 결정하고 결국 가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 아래, 문주 디자인에 대한 조합의 요구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문주는 상당한 비용 부담을 수반한다. 특수 마감재와 구조, 조명 장치 등이 더해질수록 공사비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문주 공사비는 대부분 일반공사비에 포함돼 별도 집계가 어렵지만, 표준 문주와 특화 문주 사이의 비용 격차는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폐쇄적 구조의 대형 문주가 단지를 주변 도시 공간과 시각적으로 단절시켜 지역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병존한다.
건국대 건축학과 안형준 교수는 "문주가 화려해질수록 공사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조합원 부담이 될 만큼 과도한 문주 경쟁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지의 상징성을 높이는 특화 설계가 필요하더라도 비용 부담과 도시 경관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