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자 고령화와 외국인 인력 의존, 치솟는 공사비로 건설산업이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정부가 공장 제작·현장 조립 방식의 모듈러 공법을 차세대 주택 공급의 핵심 수단으로 키우기로 했다. 2030년까지 국내 모듈러 시장이 최대 2조 80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특별법 제정과 공공 발주 확대를 두 축으로 하는 산업 육성 전략이 가시화되고 있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10일 오전 전북 군산시 모듈러 주택 제작 공장을 직접 찾아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업계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KAIA) 관계자들과 함께 산업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방문은 국내 모듈러 주택의 고층화·대형화를 이끌 핵심 시범사업인 'LH 의왕초평 A4블록 모듈러주택 사업' 제작 현장을 점검하기 위한 것으로, 해당 사업은 총 381가구·860억 원 규모로 추진된다.
모듈러 공법은 벽체·바닥·배관 등 건축물 주요 부재를 공장에서 70~80% 완성한 뒤 현장으로 운반해 조립하는 방식이다. 기존 철근콘크리트 현장 타설 방식과 달리 공장 제작과 부지 공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 전체 공사 기간을 20~30% 단축할 수 있고, 높은 곳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적어 안전사고 위험도 낮다. 경기 의왕초평 A4블록 사업처럼 22층 공동주택에 적용된 사례도 나오면서 고층 시공 가능성까지 확인되고 있다. 해당 단지는 최근 모듈러 주택으로는 처음으로 장수명주택 '우수등급' 인증을 받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 장관은 "작업자 고령화, 외국인 인력 의존 심화, 기후 변화 등으로 우리 건설산업이 구조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체계적인 공정 관리가 가능한 모듈러 기술이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고품질 주택을 빠르게 공급하는 핵심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 모듈러 산업의 이정표가 될 프로젝트인 만큼 차질 없이 추진해 향후 시장을 견인하는 모범사례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다만 넘어야 할 장벽도 적지 않다. 현재 모듈러 공법의 공사비는 기존 방식보다 약 30% 높다. 발주 물량이 부족해 공장 자동화 설비와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기 어려운 데다, 사업마다 평면 설계가 달라져 거푸집을 새로 제작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날 간담회에서 초기 인프라 구축 비용 부담과 함께 모듈러 공법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건설 기준·규제 문제를 집중 건의했다.
정부는 공공 발주를 늘려 생산 물량을 확보하고 단가를 낮추는 방향으로 산업 생태계를 키워가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안에 LH 등 공공사업자의 임대주택·관사와 신축매입임대 시범사업을 통해 모듈러 공공 물량을 기존 1500가구에서 3000가구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으며, 2030년까지 모듈러 공공주택 1만 6000가구 이상 공급이라는 목표도 제시된 상태다. 고양창릉·남양주왕숙2 등 3기 신도시 사업에도 중고층 모듈러 주택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제도 정비도 병행 추진된다. 국토부는 '모듈러 건축 활성화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생산·건축 인증 제도를 신설하고 맞춤형 특례와 인센티브를 마련할 방침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12월 여야 의원 11인이 공동으로 발의했으나, 설계·시공 통합 발주 허용 여부를 두고 업계 의견이 엇갈리며 현재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달 들어 지역 중소기업 참여 비율을 강제하는 내용을 담은 별도 법안이 추가 발의되면서 논의가 더 복잡해진 상황이다.
건설업계는 공공 발주 확대와 특별법 제정, 표준화 기준 및 인증제도 구축이 한꺼번에 이뤄져야만 모듈러 시장이 본격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장이 안정적으로 가동돼야 자재 구매·인력 배치·자동화 설비 투자가 가능해지고, 그래야만 공사비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다. 김 장관은 "모듈러 기술이 국민 주거 안정과 건설산업 혁신을 이끄는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든든히 뒷받침하겠다"며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제도 개선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