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메가프로젝트에 요동치는 광주·전남 땅값…"토허구역부터 지정했어야"

정부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공개된 지 일주일도 안 돼 광주·전남 일대 땅값과 테마주가 요동치면서, 정작 투기를 막을 안전장치는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국회와 업계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다. 발표 전후로 이 지역과 연고를 둔 '반도체 테마주'가 상한가와 급락을 반복했고, 반도체 팹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의 부동산도 들썩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은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광주전남 지역의 땅투기를 조장할 의도가 아니라면 호남 반도체 관련 부동산 역시 과열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반도체 메가프로젝트에 요동치는 광주·전남 땅값…"토허구역부터 지정했어야"
ⓒ 연합뉴스

발단은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다. 정부는 반도체·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3대 축으로 삼아 수도권에 몰린 첨단산업 거점을 지방으로 분산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 핵심이 삼성전자의 광주 신규 반도체 팹 건설로, 삼성전자는 광주에 전공정 팹을, 충남 아산에는 후공정 팹을 짓는 방안을 확정하고 400조원 규모를 투입하기로 했다. 호남 전체 투자 규모는 425조원, 여기에 SK하이닉스까지 가세한 서남권 클러스터 투자는 300조원을 웃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5년 안에 산업단지 조성을 마치겠다는 속도전을 예고하며 인허가 절차 단축과 전력·용수 등 인프라 구축 지원책도 함께 내놓았다.

문제는 이 같은 '속도' 대책에 시장 과열을 억제할 장치가 빠졌다는 점이다. 외지인이나 법인의 기획부동산식 지분 쪼개기 매입을 관리하거나 자금출처를 조사하고 이상거래를 점검하는 등 구체적인 시장 안정화 방안은 발표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강 의원은 정부가 지난달 화성 동탄과 용인 기흥, 구리를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사례를 들며 "반도체 호재가 땅 투기를 부른다는 사실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작은 신도시 조성 계획 하나를 발표할 때도 정부는 사전에 조용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며 "수천조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 발표에 앞서 비밀리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조치가 이뤄졌어야 했는데 그러한 조치는 전혀 없었고, 심지어 공식 발표 전부터 여러 경로로 투자 정보가 누설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잡을 것"이라고 밝힌 점을 거론하며 후보지의 즉각적인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고위공직자 사전 투기 여부에 대한 투명한 해명을 요구했다.

이런 우려는 근거 없는 기우가 아니다. 대형 국책사업이 발표될 때마다 '규제 시차'로 인한 투기 유입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2011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당시 정부는 유치가 확정된 뒤에야 대관령면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는데, 그마저도 공고 후 5일이 지나서야 효력이 발생해 그사이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외지자본이 대거 유입됐다. 3기 신도시 발표 때도 후보지와 인근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실제 규제가 적용되기까지 6일간 공백이 생기며 선매수 거래를 막지 못했다.

반도체 산단 조성 사업에서도 유사한 전례가 있다. 2019년 조성이 시작된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원삼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뒤에도 지가 상승 기대심리가 가라앉지 않아 매년 재지정이 이어졌고,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이 지역에서 부동산 투기를 벌인 기획부동산업자와 위장전입자 43명을 적발한 바 있다. 세부 부지와 전력·용수 공급 경로가 구체화된 뒤에야 핀셋 규제에 들어가는 방식으로는, 이미 내부정보나 기획부동산이 필지를 선점한 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인프라 영향권 전체를 대상으로 사전 거래동향 점검체계를 마련하고 이상거래 조사체계로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투기세력의 진입장벽을 원천적으로 높이기 위해 이행강제금 등 강력한 제재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도권 한계농지 활용 방안을 다룬 학계 연구에서 제시된, 비농업인의 투기성 매입에 공시지가 50% 수준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벤치마킹 모델로 거론되지만, 이는 한계농지를 전제로 한 제도인 만큼 반도체 산단에 적용하려면 별도의 법적 검토와 입법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한 속도전 못지않게, 토지보상비 상승에 따른 사업 지연과 원가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투기 방지 대책이 개발 계획과 동시에 실행돼야 한다는 게 업계와 정치권의 공통된 진단이다. 첨단 산업단지가 투기 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발표와 규제 사이의 시차를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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