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네, 어떤 아파트에 거주하느냐가 이성을 만나고 배우자를 고르는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학력과 직업이 상대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잣대였다면, 최근에는 거주 아파트 자체가 자산 수준과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부동산이 계층을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아파트 단지를 매개로 한 소개팅 서비스와 결혼정보회사가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단지 내에는 지난해 11월 '헬리오 결혼정보'라는 간판을 내건 결혼정보회사가 문을 열었다. 이 아파트는 3.3㎡당 매매가가 1억원을 넘어선 곳으로, 개점 당시 이미 200명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헬리오시티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에 이어 아파트 이름을 내건 두 번째 결혼정보회사로 꼽힌다.
래미안 원베일리에서는 2023년 12월 입주민 자녀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모임 '원결회'가 결성된 것이 시초다. 가입비 10만~20만원, 연회비 30만원을 내면 단체 소개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다, 현금영수증 발급 요청이 늘면서 지난해 7월 결혼정보회사 '원베일리 노빌리티'로 법인 전환했다. 초기에는 원베일리 입주민만 가입할 수 있었지만, 올해 2월부터는 서초·강남 지역 전체로 문호를 넓혔고 입주민 추천이 있으면 다른 지역 거주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가입자는 800명 안팎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4대 6 비율을 보인다.
회비는 등급별로 차등화돼 있다. 연 50만원을 내면 한 해 3~4차례 단체 소개팅 기회가 주어지는 '실버' 등급부터, 500만원에 1대1 소개팅을 다섯 차례 주선받는 '크라운', 2년에 1100만원을 내고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상대만 소개받는 '로열노빌리티', 개별 상담을 거쳐 가입비가 정해지고 상속 관련 법률 자문까지 제공되는 '소버린'까지 다양하다. 이 과정에서 실제 결혼에 성공한 입주민 커플도 여럿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흐름은 초고가 단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보통신(IT) 업계에 따르면 최근에는 2030세대를 겨냥한 아파트 거주자 전용 소개팅 앱 '아파팅'도 등장했다. 가입자는 주민등록등본 등을 통해 실제 아파트 거주 사실을 인증해야 하고, 인증을 마치면 자신이 사는 단지나 관심 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이성을 추천받는다. 직업이나 학력, 취미가 아니라 거주 아파트와 지역 자체가 매칭의 핵심 조건으로 쓰이는 셈이다.
고가 아파트 입주민 간 교류도 소개팅 모임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번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서초구 메이플자이와 래미안 원베일리 입주민들이 함께한 스포츠 교류 행사가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부동산 가격에 따라 연애와 결혼 상대를 고르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주거지를 매개로 한 만남 서비스는 앞으로도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