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에 물건을 대던 중소 협력업체 상당수가 수억원대 미수금을 떠안은 채 회사의 운명을 지켜보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홈플러스 납품 중소상공인 15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받지 못한 납품 대금은 평균 7억7400만원에 달했다. 미정산 금액이 5억원을 넘는 업체 비율도 40.7%로 나타났다. 홈플러스와 거래하는 협력사 4603곳 가운데 47%는 매출의 절반 이상을 홈플러스에 의존하고 있어, 회사의 존폐가 곧 이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재판장 정준영 법원장)는 3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기업을 계속 운영할 때의 가치보다 청산할 때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사업 부문 매각은 성사됐지만 나머지 사업부에 대한 인수합병이 이뤄지지 않은 채 영업을 지속하며 매출이 줄어드는 반면, 급여·물품대금·조세 등 공익채권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폐지 결정의 직접적 계기는 자금 조달 실패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30일 대형마트를 126개 점포에서 67개로 재편하고 인력을 절반가량 줄이는 내용의 수정 회생계획안 변경안을 제출했지만, 이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 자금 2000억원을 마련할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과 최대주주 MBK파트너스는 긴급운영자금(DIP) 대출을 둘러싸고 한 달 넘게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법원은 회생계획안이 수행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별도 심리 없이 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다만 파산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14일 이내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으며, 그 안에 자금을 조달해 항고하면 재판부가 폐지 결정을 취소하고 관계인집회 기일을 다시 잡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법원은 이번 결정 이후 기존 경영체제 유지, 회생절차 재신청, 홈플러스의 자진 파산 신청, 채권자의 파산 신청 등 네 가지 시나리오를 이해관계자들에게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앞서 법원에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을 9월까지 연장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안수용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위원장은 “이런 결정이 날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며 “여당과 MBK 등을 만나 관련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하루아침에 불거진 일이 아니다. 1997년 삼성물산 유통 부문 할인점 사업으로 출발한 홈플러스는 1999년 영국 테스코에 경영권이 넘어갔고, 2011년 테스코 100% 자회사가 됐다. 2015년에는 MBK파트너스가 당시 국내 기업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인 7조2000억원에 홈플러스를 사들였다. 이후 순차적 매각과 구조조정을 거치며 회사는 자금 여력을 잃어갔고, 작년 3월 결국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126곳이었던 점포는 지난달 67곳까지 줄었고, 한때 2만명에 달했던 직원은 희망퇴직 등을 거쳐 1만5000명으로 감소했다. 지난달 하림그룹 계열 NS쇼핑이 슈퍼마켓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며 소속 직원이 이동해, 현재 본사 소속 직원은 1만2000명 수준이다. 이 중 3000명가량은 지난달 발표된 37개 점포 폐점 조치로 휴직 중이며, 부천 소사점과 순천 풍덕점 등은 이미 폐점이 확정됐다.
회사의 재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기준 홈플러스의 자산은 약 7조3040억원, 부채는 7조649억원에 달하고,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만 2907억원, 유동성 장기차입금은 1조3152억원에 이른다. 반면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104억원 수준에 그친다.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1206억원의 현금을 확보했지만 대금 납입까지 약 두 달이 걸려 단기 유동성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즉시항고 기한 안에 홈플러스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1만2000명의 직원과 수천 곳에 이르는 협력업체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