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후주택 비중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지만, 정작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착공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공급 목표치를 높이는 것보다 사업을 실제로 굴러가게 하는 구조적 병목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잇따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14일 서울 중구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 경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과 민간 전문가, 주택건설·금융업계, 공공기관, 청년·신혼부부 등 약 60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급·금융·세제 등 3개 분야에 걸쳐 7개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토론회는 오는 23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를 앞두고 국토부, 금융위원회, 재정경제부가 사흘간 순차 개최하는 릴레이 토론의 첫 번째 자리였다.
이날 토론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제기된 문제는 정비사업의 '착공 가뭄'이었다. 서울시에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단지는 2249곳에 달하지만, 이 중 실제 시공 단계에 진입한 곳은 약 7%에 그친다는 수치가 제시됐다. 서울 주택 중 노후 주택 비중이 49.8%에 달하고 노원구·강북구 등 외곽 지역은 64~68%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비사업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병목의 원인으로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와 임대주택 의무 비율, 이주비 대출 규제를 집중 거론했다. 재초환은 재건축 사업성을 직격하고, 임대주택 공급 비율은 재개발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 건'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개발이익 환수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사업 추진 자체를 막는 수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적정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이주비 대출 규제에 대한 현장 호소도 잇따랐다. 도심복합사업을 추진 중인 신길2지구 위원장은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이주비 대출을 취급하겠다는 금융기관이 없다는 현실을 토로하며 신속한 이주를 위한 대출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주비 대출은 투기 목적이 아니라 기존 자산을 담보로 이주 비용을 마련하는 생계형 대출이라는 점에서 가계부채 규제와 동일선상에 놓아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서울시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서울시 공동주택과장은 이주비 담보인정비율(LTV)을 70% 수준으로 완화하고, 강남3구·용산구 등 기존 투기과열지구 외 지역에 대해서는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유예해달라고 건의했다. 지역별 사업 여건이 다른 만큼 규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지역 특성에 맞는 차등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지역별 사업 지연 요인도 구체적으로 짚어졌다. 강남3구는 분양가상한제로 수요가 있음에도 시공비 분담금이 크게 오른 게 문제이고, 여의도·목동은 종상향을 위한 기부채납 협의가 사업 속도를 좌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 노원구·도봉구·강북구 등 외곽 지역은 분담금 자체가 부담돼 사업 추진이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규제 지역 지정이 지역별 여건과 무관하게 패키지로 묶여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비아파트 공급 확대를 위한 금융·세제 완화 요구도 이어졌다. 지난해 9·7 대책으로 신축 주택매매업과 임대사업자의 LTV가 0%로 강화된 것이 비아파트 공급 위축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2030년까지 취득하는 60㎡ 이하 비아파트에 대해 취득세·종부세·양도세 산정 시 주택 수 제외 혜택을 내년 말로 예정된 일몰 기한 이후로도 연장해달라는 건의도 제출됐다.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 3룸 공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원인으로 주차 규제가 지목됐으며, 기준을 완화하면 3룸 공급이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정비사업과 신규택지 외에 '제3의 공급축'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주목을 받았다. 도심 내 저이용 부지를 발굴·활용하고, 업무시설의 주거시설 전환을 위한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실 상가·오피스의 주거용 전환, 용적률·건폐율 개선을 패키지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편 토론회를 둘러싸고 비판적 시각도 나왔다. 정부의 기본 입장과 공급 로드맵 없이 국민에게 해법을 묻는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공급 속도를 앞세우기보다 어떤 주택을 누구에게 공급할지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문도 제기됐다. 규제 지역 해제에 따른 가격 급등 부작용을 우려하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전문가와 업계, 청년, 시민의 의견을 경청해 곧 있을 부동산 대책 발표에 최대한 반영하겠다"며 "부동산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15일 금융위원회, 16일 재정경제부 주관 토론회를 잇달아 열고, 23일 대통령 주재 종합 토론회에서 의견을 집약해 부동산 제도 개선에 반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