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서울의 전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경기도로 대거 이동하고 있지만, 정작 경기도의 전세난은 서울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거주 중심의 정책 전환과 입주 물량 감소가 맞물리면서 경기도 전세 시장은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쪼그라드는 구조적 불균형이 뚜렷해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 아파트 전세 물건은 1만2392건으로 전년(2만4076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감소율은 48.6%로, 같은 기간 서울이 2만4801건에서 2만556건으로 17.2% 줄어든 것보다 세 배 가까이 가파르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감소 폭이 가장 크다. 국가데이터처 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입한 인구는 8만3984명으로 직전 분기(6만4152명)보다 30.9% 늘었다. 서울을 탈출한 세입자들이 경기도로 몰리면서 전세 물량을 빠르게 잠식한 결과다.
지역별 전세 물량 감소는 서울과 인접한 곳일수록 더 가파르다. 광명시는 전세 물건이 289건으로 전년(1584건) 대비 81.8% 줄며 경기도 내 최대 감소율을 기록했다. 2024~2025년 신축 입주 물량이 쏟아져 전셋값이 일시적으로 약세를 보였던 이 지역이 서울 접근성 덕분에 수요를 빠르게 흡수한 것이다. 성남시 중원구도 전세 물건이 83건에 그쳐 전년 대비 72.2% 감소했고, 고양시 일산동구 역시 349건으로 70.4% 줄었다. 구리시도 같은 기간 71.6%가 사라지며 69건만 남았다. 광명 철산 래미안자이(2072가구)에는 전세 매물이 단 1건, 광명 두산위브 트레지움(1248가구)에는 0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공급이 쪼그라들자 가격은 가파르게 올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경기도의 올해 누적 전셋값 상승률(1월 1일~6월 29일 기준)은 3.48%로 매매가 상승률(2.87%)을 이미 추월했다. 지역별로는 광명이 올 들어 전셋값이 7.23% 뛰어올랐고, 안양 동안구 6.38%, 수원 영통구 6.27%, 하남시 5.60%, 성남 중원구 5.12%, 용인 수지구 4.91%, 구리시 4.38% 순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하락세를 보이던 지역들이 올 들어 일제히 반등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젠트리피케이션의 수도권 확산'으로 진단한다. 서울의 전세가 상승세와 월세화로 가격 부담을 느낀 세입자들이 타협 가능한 금액대의 물건이 있는 경기권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전세 물량 부족과 가격 급등이 맞물려 주거 불안이 경기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거주 의무 강화 등 규제가 임대 매물 감소를 구조적으로 고착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주택을 처분한 집주인들이 늘어난 것도 전세 공급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하반기 전망은 더 어둡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경기도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6만1420가구로 지난해(7만4760가구)보다 17.8%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전국 주택 전셋값이 연간 5.0% 오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전세 물건 부족과 보증금 부담 증가가 아파트값 하락을 막고 임대시장 불안이 매수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만간 세제 개편안이 발표될 경우 임대 물량이 매매로 전환될 가능성도 전세난을 심화시키는 변수로 꼽힌다. 특히 규제 지역 확대로 갭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집주인이 전세를 내놓을 유인이 줄어드는 점도 임대 공급 위축을 구조적으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월세 주거비 부담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수요자들은 전세를 선호하는데, 공급은 줄고 수요는 몰리는 구조가 당분간 이어지면서 서민 주거난 문제가 하반기로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