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배후 주거지로 꼽히는 경기 남부 지역의 전셋값이 올해 들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하며 서울을 훌쩍 넘어섰다. 삼성전자 사내대출 등 유동성 유입,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전세 공급 감소, 신규 인허가 축소까지 복합 요인이 맞물리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쉽게 꺾이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9월 7일 기준 아파트 전셋값 누적 상승률은 화성 동탄구 11.73%, 용인 기흥구 10.55%를 기록했다. 수원 영통구와 하남시도 각각 9.34%, 9.64% 올랐다. 경기도에서 상승폭이 가장 가파른 곳은 광명시로 12.52%에 달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셋값 상승률이 7.61%인 점을 감안하면 일부 경기 남부 지역의 오름폭이 서울을 크게 웃돈 셈이다. 경기 전체 평균은 5.17%로 서울보다 낮아, 전 지역이 고루 오른 것이 아니라 선호 지역에 상승세가 집중된 구조임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탄탄한 실수요가 자리한다. 동탄·기흥·영통은 삼성전자 화성·평택 사업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직주근접 수요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고액 성과급과 삼성전자 사내대출이 본격화되면서 해당 지역으로의 유동성 유입이 가속화됐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아울러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거비 부담이 낮다는 점도 실수요층을 꾸준히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세 공급 부족도 가격을 밀어올리는 핵심 변수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9월 11일 기준 기흥구 전세 매물은 연초 625건에서 379건으로 39.4% 줄었다. 동탄구도 행정구역 개편 이후인 2월 초 374건에서 359건으로 감소했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 6월 말 동탄구와 기흥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하면서 실거주 의무가 부여되자 집주인들이 전세를 거두는 사례가 잇따르며 전세 공급 감소에 불을 지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탄 일대에서는 같은 단지·같은 면적 기준 2년 만에 전세 보증금이 2억5000만원 이상 오른 계약이 체결되는 사례도 보고됐다.
매매가격 급등이 전세 수요를 가중시키는 측면도 있다. 올해 동탄 아파트 매매가격은 17.50% 상승했고, 영통은 12.35%, 기흥은 11.70%, 하남은 11.25% 올랐다. 매매가격이 단기간에 치솟으면서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전세를 선택하는 수요가 늘어난 결과가 전셋값 상승에 다시 반영되는 구조다. 이달 첫째 주 기준 주간 전셋값 상승률도 하남 0.29%, 영통 0.28%, 기흥 0.22%, 동탄 0.21%로 경기 평균(0.14%)의 최대 두 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반도체 산업 회복 기대감을 배경으로 경기 남부 주거지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으며, 10억원 전후의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반도체 업계 실수요자들의 거래가 가격을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동탄과 영통의 상승폭이 규제와 단기 급등 부담으로 다소 둔화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한 기흥으로 수요가 이동하면서 강세 범위가 넓어지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급 측면의 여건도 좋지 않아 당분간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경기지역 주택 인허가는 4만2760가구로 전년 동기보다 7.5% 감소했고, 착공은 4만4477가구로 같은 기간 20.6% 줄었다. 7월 한 달만 따로 보면 경기 착공 물량은 6059가구로 전년 같은 달 대비 39.2% 급감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도 올 상반기 수도권 주택 착공 누계가 전년 동기 대비 0.7% 줄었고, 인허가도 8.1% 감소했다며 8·13 대책의 공급 확대 효과가 실제 입주로 이어지기까지 상당한 시차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산업이라는 탄탄한 고용 기반 위에 공급 공백과 규제 효과까지 겹친 경기 남부 핵심 지역에서 전셋값 강세가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금리 방향과 추가 대출 규제, 반도체 업황 변화 등 외부 변수에 따라 상승 기조가 꺾일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지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