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발발한 중동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건설 현장의 자재 수급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과 고환율, 원자재 수급 불안이 겹치며 자재 협력사들의 납품단가 인상 통보가 잇따르고 있고, 시공사들의 공사원가 부담 확대와 공사 기간 지연 우려가 연쇄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15일 건설·정비업계에 따르면 대형 건설사들이 전국 주요 정비·개발 사업지 시행사들에게 중동전쟁에 따른 자재 수급 불안과 공사비 상승 리스크를 알리는 공문을 잇달아 발송하고 있다. 공급망 교란으로 건설 현장 전반에 자재 수급 불균형과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통제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대외적 변수라는 게 이들 공문의 공통된 내용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공정률이 일정 수준 이상인 주요 사업지 시행사들에게 중동전쟁 등 건설 환경 악화로 인한 공기 지연 및 원가 상승 리스크를 사전 공유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는 자재 협력사들이 국제유가·환율 급등, 운송비 증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을 이유로 나프타 등 주요 원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주요 자재 단가를 상당 폭 인상할 예정이라고 통보해 왔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레미콘 혼화제, 철골 강판 및 후판 등 핵심 원자재의 공급 지연이 발생하고 있고, 전 세계적인 수급 불안으로 대체 공급원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포스코이앤씨 측은 현재 공기 지연이 예상되는 현장은 없지만,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시행사와 선제적으로 공유하고 자재 수급 불균형에 대비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건설도 지난달 말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 조합에 공문을 보내 전쟁 장기화로 원자재 공급 중단이 지속될 경우 준공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며, 대외 여건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공사비 보전 방안도 함께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현대건설에 따르면 자재 협력사들은 중동전쟁 여파로 4월부터 페인트, 단열재, 방수재, 도배지, 아크릴, 시트지 등 주요 자재 가격을 10~40% 인상하기로 했다. 또 비슷한 시기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 조합에는 공사비를 3834억원에서 6733억원으로 75.6% 인상해달라는 요구도 제기했다. 설계 변경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증액 요청이지만,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처럼 건설 현장 일선에서 나타나는 공급망 불안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매달 발표하는 건설기업 경기실사지수(CBSI) 중 자재수급지수는 지난 3월 74.3을 기록해 전월(91.0) 대비 16.7포인트 급락했다. 이 지수가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자재 수급 여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정부도 건설업계의 공급망 위기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중동전쟁 상황을 '불가항력 사유'로 인정하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민간 건설공사의 책임준공 기한 연장을 가능하게 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공공 건설공사의 계약금액 조정 요건 완화, 단품 물가 변동 조정제도 대상 확대, 계약기간 연장 등 공공 계약 지원 종합대책도 내놓은 바 있다.
국토부는 15일부터 17일까지 전국 권역별 지방정부 및 지역 건설업계와 중동 상황 대응 합동 간담회를 개최해 현장의 애로사항을 청취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달 초부터 1차관 주재로 운영 중인 건설 현장 비상 경제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현장 의견을 신속하게 정책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