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부동산 시장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전셋값 상승=집값 상승' 공식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갭투자 전면 금지와 대출 규제 강화로 전세보증금의 레버리지 역할이 약화하면서 두 가격 간 연동성이 느슨해지는 흐름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과거에는 전셋값이 오르면 매매가격도 뒤따라 상승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적은 자기자본으로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가 성행하던 시절, 이 방식으로 집을 사는 수요가 늘어날수록 집값도 함께 오르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정부가 갭투자를 사실상 전면 차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규제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반드시 실거주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고, 분양 후 잔금을 낼 때 소유권 이전 조건부 대출도 금지됐다. 여기에 전세자금대출 보증 한도와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서 전세 대출 자체가 까다로워졌다.
정보현 NH투자증권 Tax센터 부동산 수석연구원은 "'전셋값 상승=집값 상승' 공식이 작동했던 건 갭투자가 허용된 시장이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그 공식이 깨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전셋값이 매매가를 끌어올리는 흐름이 뚜렷했지만, 그 이전에는 두 가격이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식이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All100자문센터 수석위원은 "10억원 이하 중저가 주택 시장에서는 실수요자 중심으로 일정 부분 영향이 남아 있다"면서 "전셋값 부담이 커지면 '차라리 사는 게 낫겠다'는 인식으로 이어져 매매가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셋값이 집값을 직접 끌어올리는 힘은 약해졌어도 하방을 지지하는 역할은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전셋값이 높다는 것은 그 집이 제공하는 거주 가치가 높다는 신호"라며 "이 점에서 전셋값이 집값을 받쳐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장에서는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월세 확정일자 비중은 2014년 39.22%에서 2022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고, 2023년 56.51%, 2024년 60.31%에 이어 지난해에는 64.67%까지 높아졌다. 올해 들어서도 월세 비중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월세 중심 구조로 전환되면 매달 발생하는 현금흐름이 핵심 변수로 부상한다. 월세 수준이 해당 주택의 수익률을 결정하고, 그 수익률이 집값을 좌우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현 연구원은 "국내 아파트 월세가 매매가격 대비 아직 낮은 수준인 만큼 앞으로 월세가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월세 수익률에 따라 집값이 결정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