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협상 시한을 불과 1시간 30분 앞두고 2주간의 휴전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양측을 오가며 이를 성사시킨 파키스탄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시간 7일 오후 8시(한국시간 8일 오전 9시)까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거나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을 경우 교량·발전소 등 주요 민간 인프라를 타격하겠다고 강도 높게 경고한 바 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파키스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2주간의 추가 협상 기간을 요청했고, 트럼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일촉즉발의 충돌은 가까스로 피해갈 수 있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휴전이 즉시 발효됐음을 공식 확인하고, 미국과 이란 대표단을 오는 10일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초청했다고 밝혔다. 샤리프 총리는 "이번 회담이 지속 가능한 평화를 이루는 데 성공하기를 바라며, 며칠 안에 더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이번 중재 성공으로 파키스탄은 1972년 닉슨 행정부의 미·중 외교 정상화 당시 길목 역할을 한 이후 반세기 만에 다시 국제 무대의 핵심 중재자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키스탄이 이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데는 복합적인 배경이 있다. 우선 이란과 국경을 접한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미국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희소한 채널'로서의 지위가 가장 큰 자산이다.
파키스탄은 지난 1년여간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 구축에 적극 공을 들여왔다. 아심 무니르 육군 참모총장은 다보스 포럼에서 트럼프와 직접 만났고, 이후 트럼프가 의장을 맡은 '평화위원회'에 합류하며 관계를 다졌다. 트럼프 가문과 연계된 스테이블코인을 국경 간 결제에 도입하는 '크립토 딜'과 뉴욕 루스벨트 호텔 재개발 합의 등은 트럼프식 실용 외교에 맞춘 행보로 분석된다.
카타르 등 걸프 국가들과 달리 자국 내에 미군 기지가 없다는 점도 중립적 중재자로서 신뢰를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란과는 남서부 발루치스탄 국경을 둘러싼 갈등을 극복하고 최근 관계를 복원했으며, 1979년 미·이란 단교 이후 워싱턴 내 이란 이익대표부를 파키스탄 대사관이 맡아온 역사적 특수성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다.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체결한 전략적 상호방위협정(SMDA)은 파키스탄이 중재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강력한 동인이 됐다. 이란이 사우디를 공격할 경우 파키스탄은 자동으로 개입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이 협정을 이란 측에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압박과 설득을 병행했는데, 이는 스스로 전쟁에 끌려 들어가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했다.
내부 사정 역시 중재 동력이 됐다. 수니파가 압도적 다수지만 세계 2위 수준의 시아파 인구를 보유한 파키스탄은 지난 2월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사망 이후 전국적인 항의 시위에 직면했다. 여기에 전쟁으로 인한 연료 공급 차질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의 지속적인 갈등까지 겹치면서, 중동 전쟁의 확산이 자국 안보에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중재를 생존의 문제로 만들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