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연일 급등하는 가운데 AI 데이터센터 수주 잔액이 분기 매출의 수십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반도체 업황이 과거와 다른 구조적 장기 호황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3분기부터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폭이 한 자릿수로 줄어들 수 있다는 신중론도 일부 제기되고 있어 하반기 업황을 둘러싼 시각은 엇갈리는 모습이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6.33% 오른 28만 5500원에, SK하이닉스는 11.51% 급등한 188만 원에 장을 마쳤다. 4월 이후 하루 5% 이상 오른 거래일이 삼성전자는 다섯 차례, SK하이닉스는 여덟 차례에 달할 만큼 두 종목으로 수급이 집중되고 있다. 주가 상승에 힘입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개인 보유 주식 평가액도 51조 7000억 원으로 50조 원을 넘어섰다.
이번 반도체 랠리가 과거 사이클과 다른 결정적 근거로 꼽히는 것이 바로 AI 데이터센터 수주 규모다. AI 특화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의 올해 1분기 수주 잔액은 994억 달러(약 146조 원)로 전 분기보다 48.8% 급증했으며, 이는 같은 기간 매출의 약 50배에 달하는 수치다. 구글클라우드와 AWS의 1분기 수주 잔액도 각각 분기 매출의 23배, 10배 수준까지 불어났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처럼 대규모 장기 수주가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메모리 업황이 과거와 달리 높은 수익성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건도 메모리 업사이클이 '더 오래, 더 높은 수준(Higher for Longer)'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메모리 수급 불균형이 내년에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고객사들이 이미 내년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수요를 앞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 측면에서도 내년 하이퍼스케일러들의 AI 설비투자가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신규 메모리 생산 라인 가동은 2028~2029년에야 본격화될 전망이어서 사실상 '메모리 공급 제로' 시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반도체 업종은 여전히 저평가 구간이라는 평가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종의 12개월 선행 PER은 현재 5.17배로 최근 20년 평균인 10배를 크게 밑돌고 있다. 반도체 업종의 12개월 선행 순이익이 지난해 말 136조 7000억 원에서 이달 8일 기준 537조 원으로 293% 급증하는 동안 시가총액 상승폭은 135%에 그쳐, 실적이 올라갈수록 PER이 오히려 낮아지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다만 하반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키움증권은 범용 메모리 가격이 3분기에 전 분기 대비 한 자릿수 상승에 그칠 것으로 보이며 가격 급등 흐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짚었다. BNK투자증권도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HBM4 비중 확대와 메모리 가격 상승폭 둔화를 하반기 주요 변수로 꼽으며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한 단계 낮췄다. 키움증권 역시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아웃퍼폼'으로 조정했다.
그럼에도 증권가 전반의 흐름은 목표주가 상향으로 수렴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26만 원에서 33만 원으로, SK하이닉스는 130만 원에서 190만 원으로 올렸고, 미래에셋증권은 삼성전자 40만 원, SK하이닉스 270만 원을 각각 제시했다. 백영찬 상상인증권 리서치센터장은 "3분기부터 수익성이 소폭 둔화될 수 있지만, 그 수준조차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높을 것"이라며 "데이터센터 투자를 멈추는 것은 영원한 후발주자로 남겠다는 뜻인 만큼 투자는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