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10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 데뷔 첫날 공모 물량의 7배가 넘는 청약을 받으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공모가는 주당 149달러로 확정됐고, 조달 규모는 265억달러(약 40조원)에 달했다. 이는 2014년 알리바바가 세운 250억달러 기록을 넘어선 것으로, 외국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 기업까지 포함해도 857억달러를 조달한 스페이스X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흥행의 배경에는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확보한 경쟁 우위가 자리한다. HBM 시장 1위, D램 시장 2위를 지키고 있는 SK하이닉스는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보다 시가총액이 높지만 주가수익비율(PER)은 오히려 40%가량 낮아, 그간 국내 증시 중심의 거래 구조에서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ADR 상장으로 글로벌 투자자들과 같은 기준에서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길이 열린 셈이다. 수요예측에서 물량보다 7배 많은 주문이 몰리자 블룸버그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지배력과 성장 잠재력에 베팅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오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 ADR 상장을 기념하는 '오프닝벨' 행사를 열고 공식 거래를 시작했다. 행사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스퀘어 수석부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 등 그룹과 회사의 주요 경영진이 대거 참석했다. 상장 주관을 맡은 JP모건은 이를 기념해 뉴욕 맨해튼의 한 빌딩 옥상 전광판에 대형 태극기를 내걸기도 했다.
ADR은 외국 기업이 본국 증시 상장을 유지한 채 예탁기관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도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발행하는 증서다. 환전이나 국내 계좌 개설 없이도 미국 투자자가 달러로 SK하이닉스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된 것이다. 곽노정 CEO는 오프닝벨 행사에서 25년 전 D램 시장 침체로 회사가 존폐 위기에 몰렸던 시절을 언급하며, 2011년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HBM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낸 성장 과정을 돌아봤다. 그는 "기술 리더십을 증명하며 AI가 있는 모든 곳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밥 맥쿠이 나스닥 부회장도 이날 행사에서 "한국과 아시아 자본시장에도 의미 있는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공모로 조달한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건설, 청주 P&T7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 구축, 극자외선(EUV) 스캐너 등 첨단 장비 취득에 투입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ADR 상장을 계기로 글로벌 투자자 저변을 넓히고 'AI 핵심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공모대금 납입은 미국 시간으로 오는 14일 마무리되며, 이번 ADR의 기초가 되는 보통주(신주)는 오는 29일경(한국시간)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추가 상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