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을 기다리기 어려운 노후 공동주택이 리모델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허가 요건이 간소하고 사업 기간이 짧다는 장점에 더해, 최근 제도 개선이 속속 마무리되면서 리모델링이 도심 주택공급의 현실적인 선택지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전국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아파트는 150개 단지, 12만1317가구에 이른다. 한국리모델링융합학회가 최근 집계한 수치로, 조합설립 총회를 마치고 준공 전 단계에 있는 사업장 기준이다. 수평증축이 134곳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수직증축 13곳, 맞춤형 3곳이 뒤를 잇는다. 서울이 83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용인 14곳, 안양 10곳, 성남 분당 9곳, 수원 8곳 순이다. 이 중 이주 또는 공사 중인 곳은 13곳이다.
이 같은 수요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도 한층 탄탄해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8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주택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핵심은 동의율 완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단지 전체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의 동의율 기준이 기존 75%에서 70%로 낮아진다. 동별 리모델링의 경우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 또한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안전성 검토 기관이 기존 국토안전관리원·한국건설기술연구원 두 곳에서 한국부동산원이 추가돼 세 곳으로 늘어난다.
주택법 개정안도 지난달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지난 8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주택법 개정안은 인접한 단지들이 통합 조합을 꾸려 함께 리모델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단지별로 전체 구분소유자·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각 동 구분소유자·의결권의 과반수 결의를 받으면 된다. 기존에는 단지별 독립 추진이 원칙이어서 소규모 단지는 사업성 확보가 어려웠다.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세대를 둘 이상으로 분할해 기존 세대수의 5% 이내에서 추가 세대를 늘릴 수 있는 세대분할 규정도 도입됐다.
리모델링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재건축과의 구조적 차이가 있다. 재건축 연한과 안전진단 통과 요건, 용적률 상한 등 각종 제약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단지, 특히 1990년대에 용적률 300% 안팎으로 지어진 1기 신도시 아파트들이 리모델링으로 선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 건물 구조체를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도 재건축 대비 50%가량 적다는 분석도 나온다. 포스코이앤씨가 자체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철거·자재 생산·시공 단계에서 리모델링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재건축보다 43~53% 적었으며, 리모델링 후 난방에너지 소요량도 기존보다 65~70% 줄일 수 있다.
대형 건설사들도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2014년 리모델링 시장에 진출한 이후 누적 46개 단지, 14조3000억원을 수주하며 점유율 약 40%로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수주액만 5조4000억원에 달한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1월 이주 없이 2년 내 사업을 완수하는 주거혁신 프로젝트 '더 뉴 하우스(THE NEW HOUSE)'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삼성물산은 기존 지하·지상 구조체를 유지하면서 세대 내부와 공용부 마감을 전면 개선하는 '넥스트 리모델링'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업계는 이번 규제 완화가 반갑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리모델링은 세대 수를 기존의 15% 이내로만 늘릴 수 있어 일반분양 물량이 적고, 그만큼 조합원 분담금 부담이 크다. 공사비 상승도 사업성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경우 현재 두 차례의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 절차도 단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의 재건축 활성화 정책이 강화되면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다 재건축으로 방향을 바꾸는 조합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재건축이 활성화될수록 리모델링이 위축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며, 각각의 특성에 맞는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두 정비 방식이 경쟁보다는 보완 관계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모델링이 주택 공급의 한 축으로 안착하려면 사업성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