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월세 부담이 가중되면서 면적을 줄여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려는 '생존 매수' 수요가 초소형 아파트 시장으로 집중되고 있다. 올 상반기 서울 전용 40㎡ 이하 아파트 거래는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강남권에서는 초소형임에도 20억 원을 넘는 거래가 잇따르는 등 가격 급등세가 서울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규모별 월세가격지수에 따르면 서울 전용 40㎡ 이하 아파트의 월세가격지수는 지난해 12월 95.38에서 올해 9월 103.19로 8.19% 상승했다. 특히 노원·도봉·강북·성북구 등이 속한 동북권은 같은 기간 94.22에서 104.62로 11.04% 뛰었다. 강남·서초·송파·강동구가 포함된 동남권 상승률(7.31%)은 물론 서울 전체 평균도 웃도는 수치다. 치솟는 임대료가 전월세 세입자들을 결국 매매 시장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거래량 통계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 서울 전용 40㎡ 이하 초소형 아파트 거래 건수는 4,661건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초소형과 중소형(전용 21~85㎡)을 합한 거래량은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의 81.6%를 차지했다. 서울에서 팔린 아파트 10채 중 8채 이상이 초소형·중소형이었던 셈이다.
거래 가격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서울 전용 40㎡ 이하 아파트 최고가는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에서 나왔다. 전용 39㎡가 지난 7월 21억 원에 손바뀜한 것이다. 같은 구 잠실동 리센츠에서는 전용 27㎡가 9월 19억 5,000만 원에 팔렸다. 전용면적 기준 약 8.4평 아파트가 20억 원에 육박한 가격에 거래된 셈이다. 강남구와 서초구에서도 전용 30㎡대가 17억~19억 원대에 거래됐다.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 전용 35㎡는 올해 1월 20억 7,000만 원에,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전용 39㎡는 5월 18억 1,000만 원에 각각 계약서를 썼다.
고가 거래가 강남3구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강 이북 14개 구 소형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처음으로 8억 원을 넘어선 데 이어, 종로구와 서대문구에서도 전용 30㎡대가 9억~10억 원에 팔리는 사례가 나왔다. 강서구 가양동의 1992년 준공 구축 아파트 전용 39㎡는 지난달 9억 2,000만 원에 거래됐다. 역세권과 재건축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최근 1년 새 3억 원 가까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면적이 작을수록 가격 상승 속도는 더욱 가파르다. 올해 1~9월 서울 전용 20㎡ 이하 아파트의 평균 거래가격은 2억 3,063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억 7,782만 원)보다 29.7% 상승했다. 전용 20~30㎡ 구간은 10.6%, 30~40㎡ 구간은 10.9% 오른 것과 비교하면 최소 세 배에 달하는 상승 폭이다. KB부동산 통계에서도 서울 소형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올 들어 12.9% 오르며 면적대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강 이남 11개 구 소형 아파트 평균값도 1년 새 9억 2,515만 원에서 11억 6,971만 원으로 26.43% 급등했다.
저가 거래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도 주목된다. 전용 40㎡ 이하 아파트에서 3억 원 미만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33.3%로, 지난해 같은 기간(41.7%)보다 8.4%포인트 줄었다. 중위 거래가격도 3억 2,800만 원에서 3억 6,500만 원으로 11.3% 뛰었다.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선택한 초소형 아파트마저 진입 문턱이 높아지면서 자금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자의 선택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수요 쏠림 현상이 지역도 가리지 않는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초소형 선호가 노원·강서·구로 등 서울 외곽으로 빠르게 번지는 양상이다. 실제로 노원구와 동작구, 서대문구 등에서도 초소형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으며, 2030세대의 매수도 급증하는 추세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20대 서울 집합건물 매수자는 올 4월 기준 1,348명으로 1월(894명) 대비 50% 넘게 늘었다.
세종대 부동산AI학과 교수는 "전월세 가격이 오르면서 매매 수요는 높아지는데 면적이 넓고 비싼 주택에 대한 대출이 잘 나오지 않으니 자연히 초소형 아파트로 수요가 몰리는 것"이라며 "금액과 면적을 줄이면서 직장 접근성을 높이고 서울 도심의 인프라를 누리려는 수요로 인해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어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대단지 브랜드 초소형 아파트에 대한 인기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 역시 "서울 저가 지역은 정책대출이 가능한 6억 원 전후 아파트를 중심으로 무주택 1인가구, 신혼부부 실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며 "임차인의 매수 움직임이 관측되면서 가격 강세 흐름이 확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면적을 줄인다고 해서 주거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초소형 주택이 이미 10억 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어, 전월세를 피해 매매를 선택하더라도 높아진 집값 앞에 주거 면적까지 포기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놓이는 실수요자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