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처음 7500선을 돌파하고, 3월 경상수지가 역대 최대 흑자를 달성하는 등 거시 경제 지표는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서민들의 실제 체감 경기는 오히려 더 싸늘해지는 괴리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중동전쟁 여파로 인한 고유가가 물가를 끌어올리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고용 한파가 계속되면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는 분위기다. 여가·외식·여행 등 선택적 소비부터 줄이는 '전략적 긴축'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비지출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는 올해 1~3월 111을 유지했으나 지난달 108로 떨어졌다. 전체 소비자심리지수는 99.2로 전달보다 7.8포인트 하락하며 지난해 4월 이후 1년 만에 100 아래로 내려앉았다. 낙폭으로는 비상계엄 사태가 있었던 2024년 12월(-12.7포인트) 이후 가장 컸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을 넘으면 낙관적, 100을 밑돌면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지난달 소비지출전망이 그나마 100을 웃돈 것은 주거비 등 피할 수 없는 필수 지출 부담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주거비 지출전망은 105, 교통비 및 통신비·의료·보건비는 각각 111을 기록했다.
반면 선택적 소비 분야는 중동 사태가 불거진 2월 이후 3개월 연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교양·오락·문화생활비는 91, 여행비 92, 외식비 93, 의류비 96, 내구재 94 등으로 조사됐다. 고물가 속에서 필수 지출은 감당하면서도 여가와 여행처럼 비용이 큰 선택 항목부터 선별적으로 줄이는 양상이 뚜렷하다.
향후 물가수준 전망 CSI는 지난해 말 140대에서 지난달 153으로 급등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6% 올라 1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석유류가 21.9% 급등한 데 이어 국제항공료도 15.9% 뛰었다. 고물가가 장기화될 경우 필수 지출까지 줄이는 전방위적 내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취업기회전망 역시 82로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과 인공지능(AI)의 일자리 대체 등이 채용시장 위축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시 지표와 체감 경기 간의 온도차는 더 벌어지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이 지난 8일 발표한 3월 경상수지는 373억3000만 달러 흑자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94억9000만 달러)의 약 3.8배에 달하며,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35개월 연속 흑자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출 호황이 일부 반도체 대기업에 집중되고 나머지 기업은 성장이 정체되는 'K자형 성장'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은 전 분기 대비 0.2% 증가에 그쳤다. 증시 호황의 '부의 효과'가 소비와 고용 등 실물 경제로 확산되지 못하는 셈이다.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주식 투자를 하지 않은 이들 사이에선 'FOMO(포모·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심리도 빠르게 번지고 있다. "주식으로 돈 번 사람은 넘치는데 우리 집만 왜 이럴까"라는 박탈감이 소비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