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도권 공공주택 공급 속도전을 선언한 가운데, 현장에서는 사업 지연과 주민 반발이 잇따르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3기 신도시 일부 지구의 사업기간은 당초 계획보다 20개월 이상 늘어났고, 서울 핵심 입지인 서리풀 공공주택지구에서는 주민 수천 명이 집단 청원에 나서며 공급 로드맵 전반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공급 차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3기 신도시다. 고양창릉은 사업기간이 당초보다 15개월 연장됐고, 남양주 왕숙2지구는 20개월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올해 수도권 공공주택 착공 목표치를 6만2000가구로 제시하고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사업기간 연장이 현실화된 셈이다.
서울 서초구 서리풀 공공주택지구 상황도 녹록지 않다. 강남권 2만 가구 공급의 핵심 거점으로 꼽히는 서리풀지구는 1지구(1만8000가구)에 이어 2지구(2000가구)까지 지구 지정을 마쳤다. 착공은 2028년, 분양은 2029년을 목표로 정한 상태지만 주민 반발이 본격화하면서 일정 준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면동 성당 신자와 송동마을·식유촌 주민 등 9519명은 대통령실과 국토부, 서울시, 서초구에 마을과 성당을 존치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주민들은 소송전도 예고한 상황이다.
이세희 송동마을 비상대책위원장은 "청년 아파트를 짓는다고 700명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서는 안 된다"며 "빈 땅이 있는 자리에 짓고, 주민 피해 없이 마을과 자연 군락을 살려놓은 상태에서 개발해달라"고 요구했다.
주민들은 전면 반대가 아닌 '존치형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성당과 기존 마을이 서리풀 전체 면적의 1.88%에 불과한 만큼, 해당 구역을 제외하고도 2만 가구 공급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사업지 내 멸종위기종·천연기념물 등 법정 보호종과 유존지역(묘역 추정지) 등 환경·문화적 검토가 필요한 요소도 많다고 강조하고 있다. 주민들은 1인 시위에 이어 침묵시위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다른 수도권 주요 입지의 공급 계획도 순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정부는 1만 가구 공급을 내세우고 있지만, 서울시는 8000가구가 한계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중앙 정부와 맞서고 있다. 과천경마장과 태릉골프장 개발도 지역 주민과 지자체 반대에 막혀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공급 일정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정부가 발표한 공급 계획이 예정보다 크게 지연될 경우 정책 신뢰성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시장에서 필요한 주택 수요를 적시에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김이탁 제1차관은 최근 공급점검 회의에서 올해 수도권 공공주택 착공 목표인 6만2000가구를 계획대로 추진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공급 성과를 조기에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리풀 등 주요 사업지에서 주민 협의가 뒷전으로 밀린 채 속도전에만 방점을 찍다 보면, 오히려 사업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