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이 12년 7개월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폭을 기록하며 주거비 부담이 한계치로 치닫고 있다. 전세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가운데 대출금리까지 동반 상승하고, 시중에 풀리는 매물은 갈수록 줄어드는 ‘삼중고’가 동시에 임차인을 덮치는 모양새다. 특히 2년 계약기간에 한 차례 추가로 거주를 보장받는 ‘2+2 계약갱신청구권’을 모두 소진한 세입자들은 당장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월세 시장의 월간 상승폭은 0.91%로, 이는 12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오름세다. 전문가들은 과거 전세가율이 51%에서 71%까지 폭등했던 시기와 유사한 양상이라면서도, 당시와 달리 반전세나 월세 통계가 포함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체감 상승폭은 더 클 수 있다고 진단한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최근의 전세난이 과거처럼 자발적으로 매매를 미루고 전세를 선택하는 구조가 아니라, 집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전세 시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수요가 누적되며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까지 집계된 올해 서울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은 4.42%로, 한 해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미 지난해 연간 상승률(3.68%)을 넘어섰다. 통상 2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전세 특성상, 2년 전 계약한 세입자들이 갱신 시점에 마주하는 보증금 인상폭이 수억원에 달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흐름은 강남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았던 강북 지역에서도 전세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성북구 한 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7억~8억원 선에서 거래되다가 올해 2월 10억8000만원에 계약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강북구의 한 단지 역시 같은 면적 기준으로 지난해 6억원대였던 전세가가 이달 들어 8억원까지 뛰었다. 강북권의 보증금 부담이 커지면서 서울 거주를 포기하고 경기도로 이주하는 세입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전세대출 금리 인상도 임차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시중은행이 새로 취급한 전세대출 평균 금리는 3.81%였으나, 올해 4월에는 4.01%까지 올랐다. 최근에는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 등 주요 은행의 전세대출 금리 상단이 6.6%에 달해 7%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은행채 금리 상승과 전세 보증 비율, 보증금 반환 보증 비율 축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여기에 새로 취임한 한국은행 총재가 여러 차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금융권에서는 연내 두 차례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매물 부족 현상은 전세난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보증금 부담이 커지면서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해 눌러앉는 세입자가 늘었고, 이는 신규 매물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 중 갱신계약 비중은 53.6%로 절반을 넘어섰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올해 1월 1일 2만3060건에서 이달 19일 1만9541건으로 15.3% 줄었다. 한 부동산 시장 분석가는 아파트 입주 물량이 지난해 약 2만5000건 수준에서 올해 1만7000건 안팎으로 30%가량 줄어든 점을 지적하며, 물량 감소 속에서도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구조적 문제가 겹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매물 가뭄은 대단지 아파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네이버부동산에 따르면 1320가구 규모의 강동구 한 대단지는 전세 매물이 단 1건에 불과했고, 1148가구에 달하는 은평구의 한 단지는 전세 매물이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9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기 직전 전세 매물은 1만5000건 수준까지 떨어지며 최저치를 기록한 뒤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대단지조차 매물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전세 수요가 가구 분화와 재건축·재개발에 따른 이주 등으로 끊임없이 유입되는 구조인 만큼, 공급 부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전세가격 오름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도시생활형 주택이나 주거형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 관련 규제를 완화해 공급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으며,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등 추가 규제 완화 필요성도 함께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