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선호 현상이 뚜렷한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도심 블록형 주택' 공급 구상이 제도적 기반 미비와 실수요 검증 부족이라는 벽에 부딪혀 재검토 수순을 밟고 있다.
도심 블록형 주택은 단독·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저층 주거지를 블록 단위로 묶어 중층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기존 가로망과 생활권을 유지하면서 빌라·다세대보다 규모와 밀도를 키운 중밀도 주거 모델로,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하기 어려운 지역에서 도심 공급을 빠르게 늘리기 위한 구상이었다. 일종의 '단지형 빌라' 또는 '도심형 타운하우스'에 가까운 형태로 볼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지난 2월 '신유형 도심주택 시뮬레이션' 연구용역을 완료하고 도입을 검토해왔다. 연구용역에서는 서울 노원구 일대 30개 필지를 대상으로 55~65㎡ 규모 주택 200세대 이상을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10층 안팎으로 건설할 경우 공사비 200억~260억원, 분양수익 460억~58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됐다. 당국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구상은 정부 고위 인사들이 공개 석상에서 직접 거론할 만큼 주목받았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월 주택공급추진본부 출범식에서 "이런 주택들의 공급 계획이 마련되고 추진되면 전세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고, 김진애 국가건축정책위원장도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5개월간 준비해 청와대에 보고를 마친 상태"라며 "결정이 내려지면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재검토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주택 규모나 관련 제도가 많이 바뀌고 있어 다시 검토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아직 발표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현행법상 다가구주택은 3층 이하, 19가구 이하, 바닥 면적 합계 660㎡ 이하 등의 규모 제한을 받고 있어,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용적률과 층수, 채광 규제 완화 등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특례 적용, 법률 개정, 시행령 정비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연구용역은 인허가 절차 간소화와 민간 주도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가로구역별 건축협정' 제도 활용안을 제안했다. 정부 관계자는 "규제 완화 수준에 따라 건축물 형태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걸림돌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대단지 아파트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블록형 주택은 사실상 다세대·빌라를 고급화한 형태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여러 필지 소유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데다 용적률 활용도가 아파트보다 낮아 사업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건축·재개발과의 충돌 가능성도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기대감이 있는 지역에서는 토지주들이 블록형 주택 사업 참여를 꺼릴 가능성이 높고, 블록형 주택이 일단 들어서면 향후 대규모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다. 공급 확대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장기적인 도심 정비 계획에 오히려 발목을 잡는 역설적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구도심을 중심으로 우선 적용할 경우 향후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며 실수요를 외면한 공급 대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