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재건축·재개발 현장이 새로운 악재를 맞이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재차 격화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물류 차질까지 겹치며 가뜩이나 공사비 갈등으로 속도를 잃어가던 수도권 정비사업 현장에 추가 부담이 쌓이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중부사령부는 이란 내 군사 목표물을 대상으로 추가 공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향한 추가 타격을 경고한 직후 이뤄진 조치다. 이날 ICE 선물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94.07달러로 전장보다 3.36% 상승했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배럴당 86.83달러로 2.95% 올랐다.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까지 동시에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유가를 끌어올리는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유가 상승과 맞물려 글로벌 해상운임도 빠르게 치솟고 있다. 7월 중순 기준 글로벌 해상운임의 바로미터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3184.82를 기록했다. 2024년 1차 홍해 대란 당시 고점(3734) 턱밑까지 올라온 수치로, 코로나19 이전 평년 수준(1000선)과 비교하면 이미 3배 이상 뛴 상태다. 드류리 세계컨테이너지수(WCI) 역시 7월 초 기준 FEU당 4530달러로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시장에서는 이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2022년 팬데믹 최고치(5109)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수도권 정비사업 현장의 공사비 구조를 직격한다. 시멘트·아스팔트·철강·레미콘 등 주요 건설자재는 생산부터 운송까지 에너지 가격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중동 분쟁이 심화되면 석유화학 계열 자재 가격이 즉각 출렁이고, 홍해를 우회하는 선박이 늘어날수록 수입 자재의 운임도 함께 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원유가격이 10% 상승하면 건설 생산비용은 0.21%, 50% 오르면 1.06%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가가 이미 급등세를 타는 상황에서 추가 상승 압력까지 더해질 경우, 건설 원가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수도권 정비사업이 유가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사실상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7.67(잠정)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6년 하반기 적용 기본형건축비도 0.77% 인상이 고시된 상태다. 수도권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는 이미 올 초부터 시공사들이 조합에 평균 40% 안팎의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여의도·목동 등 서울 핵심 정비사업지의 경우 3.3㎡당 공사비가 1500만원을 넘나드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공사비 갈등이 실제 착공 지연으로 이어지면서 수도권 주택 공급 파이프라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재건축·재개발과 달리 법적 공사비 검증 제도가 없는 리모델링 시장의 경우 사태가 더 심각하다. 서울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83개 단지, 7만3120가구 가운데 실제 공사 단계에 진입한 곳은 665가구, 가구 수 기준 0.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건축 붐이 일면서 리모델링 사업이 대거 지연된 데다, 공사비 갈등으로 착공 자체를 포기하거나 미루는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비사업 병목은 수도권 전체 착공 실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주택 인허가 물량이 실제 착공과 입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공급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인허가와 착공, 준공 사이에 3년 안팎의 시차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착공 부진이 2028년 이후 입주 절벽으로 직결될 수 있다. 정부는 수도권 규제지역 내 착공 지연 물량 10만 호에 대한 조기 착공 지원책을 5월 발표했으나, 유가 급등이라는 새 변수가 더해지면서 이 대책만으로 공급 흐름을 되살리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건설업계에서는 현대건설·포스코이앤씨 등 일부 주요 건설사들이 이미 사업장에 공사 기간 연장 및 추가 공사비 발생 가능성을 안내하는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지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하반기부터는 공기 지연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수도권 100여 곳 사업장에서 공사비 갈등이 속출할 것이라는 업계 예측이 현실화되는 흐름 속에, 유가 변수까지 겹치면서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의 분담금 부담과 사업 추진 의지 모두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공사 기간이 긴 정비사업일수록 원가 변동에 취약한 구조인 만큼, 올 하반기 원가 관리 역량이 사업 완주 여부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