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가 만든 보이지 않는 선…'15억' 서울 아파트 시장의 '마의 구간'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이 대출 규제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이뤄진 아파트 매매 3만9489건 가운데 77.5%에 해당하는 3만588건이 15억원 이하 거래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72.0%보다 5.5%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집값이나 입지가 아닌 대출 한도 기준선이 거래 지형을 바꾸는 핵심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대출 규제가 만든 보이지 않는 선…'15억' 서울 아파트 시장의 '마의 구간'
ⓒ 연합뉴스

이 같은 쏠림 현상의 배경에는 금융위원회가 시행 중인 주택담보대출 구간별 한도 규정이 있다. 수도권 및 규제지역에서 시가 15억원 이하 주택을 살 때는 최대 6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15억원을 단 1원이라도 넘으면 한도가 4억원으로 줄어든다. 25억원 초과 주택은 최대 2억원에 그친다. 집값 차이가 불과 1000만원이어도 필요한 자기자금이 2억원 이상 벌어지는 구조다. 예컨대 15억원짜리 아파트 매수 시 자기자금은 최소 9억원이지만, 15억1000만원짜리를 살 경우 최소 11억1000만원이 필요하다.

실제 거래 통계는 이 경계선의 영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9억원 이하 아파트로의 수요 이동도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9억원 이하가 차지한 비중은 48.5%로, 지난해 같은 기간 39.5%에서 9.0%포인트나 뛰었다. 반면 25억원 초과 주택의 거래 비중은 9.1%에서 7.3%로 낮아졌다. 대출 여력이 클수록 거래가 활발해지는 구간 집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거래 증가세는 서울 외곽 저가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상반기 도봉구 아파트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72.8% 증가했고, 금천구는 71.9%, 노원구 64.6%, 중랑구 60.3% 순으로 증가 폭이 컸다. 이들 지역은 상대적으로 15억원 이하 아파트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성동구(-66.2%)와 마포구(-56.1%)는 집값 상승으로 15억원 초과 물건이 많아지면서 거래가 급감했다.

가격도 이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8월 마지막 주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성북구가 한 주 만에 0.54% 올랐고, 중랑구 0.52%, 노원구 0.50% 순으로 외곽 지역의 상승세가 뚜렷했다. 같은 기간 강남구와 서초구는 각각 0.41%, 0.23% 하락했다. 대출 접근성이 높은 구간에 수요가 집중되면서 전통적인 강남-비강남 가격 방향이 역전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수요자들이 면적까지 줄이는 양상도 통계로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 전용면적 40㎡ 이하 아파트 거래량은 398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692건보다 48.0% 급증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15억원 이하라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더 작은 평형을 선택하는 수요자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경매 시장에서는 이 경계선을 의식한 입찰 행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한강극동 전용 84㎡는 지난 3월 감정가 12억8000만원을 크게 웃도는 14억9999만9999원에 낙찰됐다. 15억원 선을 단 1원 밑에서 멈춘 이 낙찰가는 대출 한도를 지키면서도 경쟁자를 따돌리려는 전략적 응찰로 해석된다. 집값이 오르면서 기존에 6억원 한도를 적용받던 단지들이 잇따라 15억원을 넘어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아파트 전용 59㎡는 한 달 새 KB시세가 14억원대에서 15억2500만원으로 뛰면서 대출 한도가 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다만 15억원 이하 주택이라고 해서 누구나 6억원 전액을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대출 가능액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차주의 소득 및 기존 부채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은행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한도를 더 낮추는 경우도 있어 실제 수령액은 규정상 한도를 밑돌 수 있다. 대출 규제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경계선'은 시장 전반의 자금 흐름과 수요 구조를 구조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통계 변화가 아닌 시장 재편의 신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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