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를 떠받쳐온 빚투와 레버리지 상품 자금이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나면서 월가 안팎에서 시스템 리스크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개별 투자자의 손익을 키우는 차원을 넘어, 레버리지 상품 자체가 주가 흐름을 좌우하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다.
레버리지 ETF의 작동 방식 자체가 위험을 증폭시키는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레버리지 ETF 운용사는 기초자산 상승률의 두세 배를 추종하기 위해 선물 등 파생상품을 매수하는데, 주가가 오르면 당일 종가 기준으로 파생상품을 더 사들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파생상품을 판매한 금융회사도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실제 주식을 추가로 매입하면서 기계적인 매수세가 주가 상승을 한층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운용사와 거래 금융회사 모두 보유 물량을 청산해야 해,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알렉산더 알트만 바클레이스 글로벌 전술전략 책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처럼 거대한 포지션을 짧은 기간 안에 청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를 "현재 시장에서 가장 큰 비재량적 위험 요인"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지난 6월 5일 3배 레버리지 반도체 ETF는 하루 만에 31% 급락하며 기초지수 하락폭의 약 세 배에 달하는 손실을 냈다.
수치로 확인되는 규모도 심상치 않다. 28일(현지시간) WSJ이 미국 금융산업규제기구(FINRA)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5월 기준 미국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마진론 잔액은 1조4000억달러(약 2170조원)로 1년 전보다 54% 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레버리지 ETF 시장도 빠르게 커졌다.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3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약 두 달 사이 레버리지 ETF 운용자산은 두 배 가까이 불어나 22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찍었다. 자금은 기술주와 반도체 지수, 테슬라, 엔비디아, 스페이스X 등을 추종하는 상품에 집중됐다. 마이크론테크놀러지가 3월 말 이후 약 300% 오르는 동안 디렉시온 3배 레버리지 반도체 ETF는 약 700% 급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반면 기초 주식이 30% 하락하면 3배 레버리지 ETF는 약 90%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은 비대칭적으로 커진다.
바클레이스 집계로는 레버리지 ETF 운용사들이 3월 말 이후 사들인 파생상품 규모만 약 3000억달러에 달한다. 마크 해킷 내이션와이드 투자운용 수석 시장전략가는 투자자들이 마진을 이용해 레버리지 ETF를 매수하면서 위험이 세 겹, 네 겹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진 대출로 레버리지 ETF를 사고 여기에 다시 옵션까지 얹는 다중 레버리지 투자가 확산되면서, 시장 참가자들이 실제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WSJ은 이 같은 위험이 한국 증시에서 먼저 현실화됐다고 짚었다.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레버리지 투자가 집중된 한국 시장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관련 레버리지 상품 거래가 주가 변동성을 키우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 이후 투자심리 악화가 미국 AI 관련 종목으로까지 번졌다는 설명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출시 한 달여 만에 국내 ETF 거래대금 상위권을 휩쓸 정도로 거래가 집중된 상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와 관련해 "레버리지 단일종목 펀드 출시를 막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고위험 상품인데도 보유자의 약 92%가 개인투자자이고 거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레버리지 상품 규모가 더 커질 경우 ETF가 기초자산 가격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거꾸로 ETF 매매가 기초자산 가격을 움직이는 현상이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데이브 나딕 ETF닷컴 리서치 책임자는 "레버리지 단일 종목 상품으로 자금이 계속 유입되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며 "가격과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사고파는 자금이 늘어날수록 시장의 변동성도 함께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증권사 찰스슈와브는 이런 흐름을 의식해 고객의 마진 거래 한도를 강화하는 등 대응에 나선 상태다. 월가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겹칠 경우, 과도하게 쌓인 레버리지가 변동성을 증폭시키며 급격한 증시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