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과 소득의 양극화가 극에 달하면서 아파트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사회적 계층을 가르는 기준으로 굳어지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전국 아파트 5분위 배율은 14.0배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상위 20% 아파트 평균가격이 하위 20%의 14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의 5분위 배율도 6.3배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자산 격차는 이제 아파트 단지 내부의 관리 방식에도 스며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강남권을 비롯한 일부 고가 단지에서는 입주민을 '자가·전세·월세' 등 거주 유형별로 분류해 관리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서울 서초구 재건축 추진 단지로 이사한 입주민은 경비원이 방문해 '입주민 카드'를 작성하도록 요구했고, 해당 카드에 자가·전세·월세 중 하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자가로 살든, 전·월세로 거주하든 관리사무소나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신경 쓸 사안이 아니다"라면서도 "일부 고가 단지에서는 입주자 거주 유형을 구분해 관리하는 관행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주거 유형에 따른 입주민 분류는 단지 관리 차원을 넘어 사실상 '신분 등록'에 가까운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계층 가르기는 만남의 영역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 거주 사실을 인증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2030 전용 소개팅 애플리케이션 '아파팅'이 등장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운영사 측은 이용자 동의를 받아 주민등록등본을 전자 조회한 뒤 등본상 주소와 아파트 주소 데이터를 대조해 실거주 여부를 확인한다고 밝혔다. 학력·직장 인증 소개팅 앱은 이미 존재했지만, 거주지 형태를 가입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이 앱이 처음이다.
고가 단지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 관계망 형성도 수년 전부터 가시화되어 왔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초고가 단지 래미안 원베일리에서는 2023년 입주민 자녀 간 만남을 주선하는 모임 '원결회(원베일리 결혼정보모임회)'가 결성됐고, 이후 정식 결혼정보회사 '원베일리 노빌리티'로 발전했다. 이 회사는 가입비 기준으로 실버(50만원)부터 소버린(개별 상담)까지 4단계 등급제를 운영한다. 이와 유사한 입주민 중심의 매칭 모임은 송파구 헬리오시티,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2차 등으로 잇달아 확산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서초구 메이플자이와 래미안 원베일리 입주민이 함께 스포츠 교류 행사를 개최해 주목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집값과 자산 양극화가 낳은 사회적 단면이라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학력이나 직업이 계층을 가르는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어느 아파트에 거주하느냐가 자산 규모와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핵심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제 정책 등을 통한 자산·소득 격차 완화와 부의 재분배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아파트를 축으로 한 계층 고착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