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세 매물이 바닥난 지역일수록 매매 거래가 늘어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와 다주택자 세금·대출 규제로 전세 공급이 급감한 가운데,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실수요자들이 매수로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500가구 이상 단지의 전세 매물 현황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신고된 이달(4월 20일 기준) 아파트 매매 계약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세 매물이 0~2건에 불과한 단지가 많은 자치구일수록 매매 거래 건수도 많은 경향이 확인됐다.
전세 매물 0~2건 단지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노원구(63곳)였으며, 성북구(40곳), 구로구(36곳), 강동구(28곳), 강서구(27곳), 송파·마포·동대문구(25곳) 등이 뒤를 이었다. 이달 아파트 매매 거래도 노원구가 420건으로 가장 많았고, 강서구(224건), 송파구(205건), 중랑구(203건), 구로구(192건), 성북구(185건) 순으로 나타났다. 전세 매물 0~2건 단지 수 상위권과 매매 거래 상위 10개 자치구를 비교하면 7곳이 겹쳤다.
전세 품귀 현상은 소규모 단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세 매물이 0~2건에 그친 500가구 이상 단지 441곳 중 1000가구 이상 대단지도 121곳(27.4%)에 달했다. 서대문구 DMC래미안e편한세상(3293가구), 강동구 고덕리엔파크3단지(2283가구), 동대문구 장안현대홈타운1차(2182가구), 관악구 관악푸르지오(2104가구) 등 초대형 단지에서도 전세 매물이 0건으로 집계됐다.
전세 품귀 현상이 두드러진 지역은 전셋값 상승률도 높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0일까지 노원구 아파트 전셋값은 3.47% 상승해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0.47%)의 7배를 웃돌았다. 성북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 0.23% 하락했으나 올해는 3.56% 급등했다. 구로구(2.27%), 마포구(2.08%), 동대문구(2.01%) 등도 서울 평균(1.98%)을 상회했다.
전세난에 떠밀린 매수세는 중저가 아파트로 집중됐다. 4월 매매 거래 중 전세 0~2건 단지에서 이뤄진 거래 639건 가운데 15억원 이하 거래는 593건으로 92.8%를 차지했다. 이는 서울 전체 4월 거래의 15억원 이하 비중(83.8%)보다 약 9%포인트 높은 수치다.
전세 품귀 현상이 심각한 지역에서는 중개업소에 미리 계약 의사를 밝히고 100만~500만원을 예약금 형태로 맡겨두는 사례까지 생겨났다고 현지 중개업계는 전했다. 성북구 종암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물건이 나오면 집도 보지 않고 계약금을 치르는 이른바 '노룩 전세' 분위기까지 나타나면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결국 매매로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공급 부족이 실수요자의 매매 전환을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강남권은 월세·매매·청약 대기 등 선택지가 다양하지만 노원 등 비강남 지역은 선택의 폭이 좁다"며 "전세를 구하지 못하면 임대나 매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대출 한도가 유리한 15억원 이하 아파트로 실수요가 몰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거주 목적의 매수가 전세 물량 감소와 맞물린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세로 나올 수 있었던 주택을 매수자가 직접 입주하면서 전세 공급 축소와 매매 거래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하반기에도 전세 품귀가 계속될 경우 일부 지역에서 매매 수요 증가와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원·성북구 등에선 '전세 매물 감소→매매 수요 증가→매매 가격 상승'의 연쇄 패턴이 이미 시작됐다는 진단도 있다. 양지영 신한프리미어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자금 여력이 있는 실수요자라면 서울 외곽이라도 역세권·신축·지역 대장주 단지는 매수를 검토할 만하다"며 "가격이 단기간에 오른 만큼 세제 개편이나 겨울 비수기 등 매물이 나오는 시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