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49.1원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이던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처분이 이어지면서 외환시장의 달러 매수 압력이 극도로 높아진 결과다.
올해 들어 지난 4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를 합산해 138조2443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달 7일 이후 이날까지 20거래일 연속으로 순매도 기록을 이어갔으며, 이 기간 순매도 규모만 70조원을 넘어섰다. 코로나 충격 이후 가장 긴 연속 매도 행진이다.
주목할 점은 증시 상승세와 외국인 매도세가 나란히 강해지는 역설적 구조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비관해서 파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포트폴리오 내 비중 조정, 즉 리밸런싱 차원에서 처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를수록 포트폴리오 내 한국 비중이 급격히 불어나고, 이를 목표 비중으로 되돌리기 위한 기계적 매도가 늘어나는 구조다. 목표 비중 5% 안팎으로 관리하던 국가 비중이 단기간에 15~20%대로 급팽창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구조적 매도세가 외환시장에 직접 타격을 주고 있다. 이날 환율은 1529.0원으로 개장하자마자 빠르게 올라, 오전 10시를 넘기며 1분에 3~4원씩 상승하는 비정상적 흐름을 보였다. 약 1시간 30분 만에 20원 넘게 뛴 셈이다.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물량이 유입되면서 상승폭이 일부 좁혀졌고,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9.4원 오른 1539.1원에 마쳤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이날 달러 매수세 쏠림이 극단적이었다고 진단한다. 수출업체들이 추가 상승을 기다리며 달러 환전을 미루는 사이, 환율이 고점이라고 판단해 달러를 미리 팔아뒀던 투자자들이 예상 밖의 급등세에 손실을 막으려 달러를 급하게 되사는 쇼트커버 물량까지 가세했다. 원화 매수세는 실종된 반면 달러 매수세만 넘쳐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이후 외국인 채권 자금이 187억달러가량 유입됐지만 이것만으로 환율 상승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월 경상수지 흑자가 역대 2위를 기록했다는 한국은행 발표가 있던 날에도 환율이 오히려 급등한 것은 그만큼 외국인 주식 매도로 인한 원화 매도 압력이 구조적으로 강하다는 의미다.
대외 여건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이란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안전자산으로서 달러 수요가 커지고 있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과 고유가, 관세 이슈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와 외국인 코스피 순매도 확대, 엔화 약세 압력 중 어느 것도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며 단기적인 환율 상단을 1550원으로 제시했다. 일부 외환 딜러들은 중동 상황과 외국인 매도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1570~1580원까지도 열어봐야 한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결국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증시 상승세가 먼저 멈춰야 한다는 다소 역설적인 분석도 제기된다. 코스피가 계속 오르는 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위한 외국인의 기계적 매도는 멈추지 않고, 이 매도 물량이 달러 수요로 이어지는 고리가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환율이 1520~1560원 사이에서 등락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