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활황에 편승한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은행권 신용대출이 이달 들어 열흘 만에 1조6000억원 넘게 불어났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6월 10일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108조1176억원으로, 5월 말 대비 증가폭이 지난 5월 한 달 증가분의 74%에 달한다. 2021년 4월 이후 최대 증가세를 보인 5월에 이어 6월에도 하루 평균 약 1600억원씩 잔액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을 주시하던 금융당국이 11일 은행권에 신용대출 관리 강화를 공식 주문하자, 불과 하루 만에 주요 시중은행들이 일제히 한도 축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 5대 시중은행 마이너스통장(한도대출)의 총 한도 규모가 96조원에 달하고, 잠재 대출 여력만도 55조원에 이른다는 점이 당국이 제동을 건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가장 강도 높은 조치를 내놓은 것은 KB국민은행이다. 오는 16일부터 마이너스통장 최대 한도를 5000만원으로, 일반 신용대출 한도는 1억원으로 각각 제한한다. 지금껏 은행권은 차주 연 소득의 100% 범위 안에서 신용대출을 취급해왔다. 연봉 1억5000만원인 직장인이라면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1억5000만원까지 설정받는 게 가능했지만, 이제는 연봉과 무관하게 한도가 일괄 차단되는 셈이다.
하나은행은 이날부터 바로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모든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조정했다. 마이너스통장의 경우 약정 기간 중 단 한 차례도 실제 대출을 받지 않으면 만기 연장 시 한도를 줄이는 사후 관리도 병행한다. 신한은행은 오는 15일부터 일별 신용대출 접수량을 실시간으로 관리해 내부 기준치를 넘어서면 그날은 비대면 신규 신청을 차단하고, 다음 날 다시 접수를 여는 방식을 택했다. 사실상 선착순 구조여서 아침 일찍 신용대출 신청을 위한 '오픈런'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은 이미 유사한 방식을 운용 중이며, 이날도 오전 9시 이전에 신규 신청이 마감됐다.
신한은행은 한도 3000만원을 초과하는 마이너스통장 가운데 만기 전 3개월간 한도 소진율이 10%에 못 미치는 계좌는 만기 연장 시 최대 20%까지 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5000만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이라도 실사용 금액이 500만원 미만이면 연장 후 한도가 4000만원으로 쪼그라들 수 있다. 직장이나 소득에 변동이 없으면 기존 한도를 그대로 유지해주던 관행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같은 조치에도 신용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 타행처럼 일괄 한도 상한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금리 인상을 통한 간접 조절에 나선 곳도 있다. NH농협은행은 오는 15일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에 적용하는 우대금리를 각각 0.2%포인트, 0.1%포인트 낮춰 사실상 대출 금리 하단을 높인다. 우리은행과 BNK경남은행은 토스·카카오페이·네이버파이낸셜 등 온라인 대출 비교 플랫폼을 통한 신용대출 접수를 일시 중단했으며, 우리은행은 비대면 신용대출 갈아타기 신청도 받지 않기로 했다.
은행권 규제 강화가 본격화되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규제를 피해 저축은행·캐피탈 등 2금융권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전세자금이나 의료비 등 긴급 자금이 필요한 일반 직장인들의 자금 조달 통로까지 막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 맞춰 다른 은행들도 추가적인 한도 축소나 심사 강화 조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대출 문턱은 당분간 더 높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