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5월 국내 건설사의 중동 지역 수주액은 5억6131만 달러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57억5174만 달러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수치다. 전체 해외 수주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도 48.5%에서 14.6%로 추락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촉발한 지정학적 충격이 업계 실적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전쟁으로 파괴된 에너지·산업 인프라의 복구 수요가 가시화하자, 업계는 오히려 이를 중동 수주를 회복할 돌파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중동 에너지 인프라 복구에 드는 비용을 최소 250억 달러(약 37조원)로 추산하며, 한국 기업이 과거 수준의 참여율을 유지할 경우 약 125억 달러(약 18조원) 규모의 수주가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2024년 연간 중동 수주액인 185억 달러에 맞먹는 규모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대우건설이다. 이 회사는 종전 합의 직후 '중동재건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해외영업을 총괄하는 글로벌인프라본부를 중심으로 플랜트·토목·건축 등 각 사업본부의 해외영업 기능을 한데 묶은 조직이다. 대우건설은 이란에서 반다르아바스~바프 간 철도공사, 아화즈 발전소, 하르그섬 해상송유기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사를 수행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종전 이후 에너지 파이프라인 복구를 비롯해 정유·석유화학·가스처리시설 개선 공사가 이어질 것"이라며 "전력·항만 등 인프라 보수와 주택·도시개발 분야의 신규 시장도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2000년부터 2025년까지 중동 누적 수주액이 804억 달러로 국내 1위인 현대건설도 중동 전역의 노후 에너지·플랜트·인프라 시설에 대한 재건 수요 확대를 점치고 있다. 다만 이 회사는 "단기간에 수주가 급증하기보다는 정치적 안정과 재원 조달 구조가 명확해진 이후 점진적으로 발주가 이뤄질 것"이라며 시장 형성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 현지에 국내 유일의 지사를 둔 DL이앤씨도 주목받는 곳이다. 이 회사는 1975년 이란에 첫 진출한 이후 이스파한 정유공장 고도화 사업과 LNG·LPG 저장탱크 공사 등을 수행했다. 2017년에는 이스파한 정유공장 개선 공사를 약 2조2000억원에 수주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중동에서 전후 재건시장이 열린다면 당연히 참여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삼성E&A와 GS건설도 UAE 루와이스 정유소 시공 경험 등을 바탕으로 유력한 수혜 건설사로 거론된다.
재건사업이 시작될 경우 어떤 분야가 먼저 발주될지에 대해서는 업계의 전망이 대체로 일치한다. 정유공장과 가스처리시설, 발전소 등 에너지 인프라 복구가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란의 경우 원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함에도 장기간의 경제 제재로 외국 자본과 기술 도입이 막혀 노후 플랜트의 개보수 수요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제재 완화 이후 기존 시설 복구와 신규 설비 건설이 동시에 추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도 지원 체계 구축에 나섰다. 외교부는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과 이라크·이란 등을 대상으로 '한-중동 포괄적 경제 협력팀'을 설치했고, 국토교통부는 해외건설협회,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중동 진출 건설사 등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발족했다. 지난 23일 열린 1차 회의에서는 중동 대형 인프라 사업 발주가 투자개발사업 방식으로 전환되는 추세에 맞춰 KIND 같은 투자기관과 연계한 공동 진출 전략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종전 이후 재건 수혜 기대가 컸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사업 추진이 지연된 전례가 있다. 이란혁명수비대가 현지 건설·에너지·물류 분야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제재 대상 기관이 사업에 연루될 경우 국내 건설사가 제재 위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거래 정상화 없이는 선수금 지급이나 계약이행보증서 발급이 막힐 수 있다는 점도 현실적인 장애물로 꼽힌다. 이란 재건사업은 기금 규모보다 제재 해제와 금융조달, 공사대금 회수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전문가 지적도 나오고 있어, 업계의 기대와 신중론이 교차하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