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버스덕트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기를 앞세운 가온전선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하거나 계약 물량을 늘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가온전선의 미국 자회사 LSCUS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의 장기 공급 계약에 이어 최근 미국 생성형 AI 기업 O사의 데이터센터에도 약 600억 원 규모의 버스덕트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LSCUS가 확보한 버스덕트 장기 공급 계약 규모는 총 5조 원을 웃돌게 됐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엔비디아 GPU 기반의 차세대 AI 데이터센터는 하나의 캠퍼스가 수백 MW에서 1GW 이상의 전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GPU 서버의 고집적화로 전력 배선과 냉각 설계가 복잡해지면서, 기존 케이블 대비 설치 효율과 안정성이 높은 버스덕트 채택이 늘어나는 이유다. 버스덕트는 데이터센터 내부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분배하는 핵심 설비로, AI 데이터센터 필수 인프라로 꼽힌다.
LSCUS의 계약 확보 속도는 가파르다. 앞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 B사와 약 1조2000억 원 규모의 3년 공급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는 또 다른 빅테크 A사와 5년간 누적 최대 4조 원 이상의 장기 프레임 계약을 확보했다. 이는 국내 전선·전력기기 업계 역대 최대 공급 계약으로, 올해 약 500억 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공급 규모가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구조다. 여기에 생성형 AI 기업까지 고객군이 확장되면서 LSCUS의 미국 데이터센터 사업은 질적·양적으로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실적 개선도 뚜렷하다. 가온전선의 올해 1분기 매출은 7636억 원, 영업이익은 27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4%, 27.2% 증가하며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LSCUS의 1분기 매출도 약 1350억 원으로 전년 동기 약 1100억 원 대비 20% 이상 늘었으며, AI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은 올해 전년 대비 30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온전선의 연간 연결 매출이 2조 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이미 확보된 장기 계약 누적 금액은 연간 매출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이 같은 성과는 가온전선이 글로벌 전선업계에서도 드물게 데이터센터 외부 전력망용 케이블과 내부 전력 분배용 버스덕트를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단발성 수주가 아닌 프레임 계약 특성상, 고객사의 데이터센터 증설 규모와 투자 계획에 따라 추가 발주가 가능해 실제 공급 규모가 계약 금액을 웃돌 수도 있다.
LS 계열사 전반의 전력 인프라 밸류체인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LS전선은 초고압 케이블, 해저케이블, HVDC, 버스덕트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미국 버지니아주 해저케이블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또 멕시코 생산법인에 총 2300억 원을 투자해 북미 현지 공급 안정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번 빅테크 A사와의 계약 물량 역시 경북 구미 인동공장에서 우선 공급하고 향후 멕시코 법인을 핵심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LS일렉트릭도 미국 빅테크 대형 데이터센터에 약 1050억 원 규모의 배전 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가온전선과 사업 영역이 맞물리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LS머트리얼즈는 데이터센터와 전력망·ESS 시장에서 활용도가 높아지는 울트라커패시터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LS전선 버스덕트사업부장은 "LS전선의 글로벌 영업 역량과 가온전선 미국 법인의 현지 대응 역량이 결합된 성과"라며 "지난해 빅테크 B사와의 대규모 계약에 이어 이번 수주까지 확보하며 미국 AI 데이터센터 공급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향후 수년간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를 공언하고 있는 만큼,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수요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과거 데이터센터 수혜주를 반도체 기업 중심으로 봤던 시각이 전력을 공급하고 분배하는 인프라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가온전선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통 전선업체가 아닌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업으로 재평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