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026년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임대차 시장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전세로 내놓았던 고가 아파트 물건이 반전세·월세로 속속 전환되고, 임대 물량 자체가 줄어드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늘어난 보유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보증금 13억 원짜리 전세 물건이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500만 원 수준의 반전세로 전환됐다. 해당 집주인이 늘어난 세 부담을 임차인에게 나누려 한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2901가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7월 입주를 시작한 이 단지는 전월세 물량이 대거 공급돼 임대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세제개편 이후 집주인들이 실거주로 돌아서겠다는 문의를 잇따라 넣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의 직접적 원인은 장기보유특별공제 기준의 변화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에서 장기보유특별공제를 기존 보유 기간 중심에서 실제 거주 기간 중심으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집을 팔 때 세제 혜택을 최대한 받으려면 해당 주택에 직접 거주해야 한다. 비거주 상태에서 임대를 계속 유지할 경우 양도세 부담이 크게 늘기 때문에, 세를 놓은 집주인들이 임대차 계약 종료 시점을 전후로 직접 입주를 서두르거나, 반전세·월세 전환으로 수익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마포프레스티지자이'에서도 비거주 집주인의 전용 84㎡ 매물이 30억 원에 새롭게 나왔다.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한강벨트 일대에서도 비슷하게 비거주 집주인들의 매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6일 만에 2107건(3.4%) 증가했다.
초고가 주택 보유자 사이에서는 매도 외에 증여나 실거주 전환을 고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현대' 인근 중개업소에서는 세제 개편 이후 추가된 매물이 3~4개 확인됐으며, 기존 물건 중에서도 호가를 낮추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 등 일부 고가 단지에서도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직접 입주한 뒤 매도하겠다는 집주인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다만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당장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정책 향방을 지켜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세제개편안에 대한 보완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가 일부 수정 방침을 시사한 탓이다. 마포구 아현동 인근 중개업소에서는 "9월 이후 세제개편안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급매가 나오면 사겠다는 수요가 있다"고 전했다. 부동산 데이터 서비스 콕집 분석에서도 고가 지역(실거래 평당가 상위 5분위)의 매물 소화 건수가 직전 3주 평균 대비 32.5% 감소해, 초고가 시장에서 집주인들이 눈치를 보며 매물을 거둬들이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세제 부담의 임차인 전가 현상이 더욱 확산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의 양지영 전문위원은 서울 핵심 지역에서는 매물 출회 효과보다 실거주 전환이나 증여를 선택하는 경우도 상당할 것이라며, 늘어난 보유세 부담이 월세나 반전세 형태로 일부 전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은행 남혁우 부동산연구원도 과거 증여·상속 목적으로 보유세를 감내하며 버텨온 고령 1주택자들이 이번 개편으로 매도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이 부동산 업계 전문가 9명에게 영향을 물은 결과에서도, 2028년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이전에 절세를 위한 매물이 강남 고가주택뿐 아니라 비강남 임대사업자 물량까지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였다.
세제개편안에 따른 임대차 시장의 불안 요인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9월 이후 국회 입법 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될 때까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